1926년 3월25일 최승희는 경성역에서 10시 정각에 출발하는 경부선 상행8호 급행열차 2등석에 올라 도쿄 유학길에 올랐다. 자신을 신입단원으로 받아준 이시이 바쿠 무용단과 함께였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으므로 도쿄로 가는 열차가 상행선, 도쿄에서 멀어지는 열차가 하행선이었다.
경성과 인천 공연을 마친 이시이 무용단은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 대구와 부산에서도 공연을 가졌으므로, 최승희의 첫 도쿄행 기차여행은 조선에서 2차례나 단속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경부선(경성-부산), 부관연락선(부산-시모노세키), 산요본선(시모노세키-고베), 도카이도본선(고베-도쿄)의 철도를 이용하는 긴 여행이었다.
일본의 첫 철도는 1872년 9월12일 수도 도쿄의 신바시(新橋)에서 항구도시 요코하마의 사쿠라기초(桜木町)을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조선 최초의 철도가 항구도시 제물포와 수도 한성을 연결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본철도는 조선철도보다 약 28년 앞섰는데, 이는 일본의 개항(1854년 3월31일)이 조선의 개항(1876년 2월26일)보다 빨랐던 기간을 반영한다.
이와 함께 간사이(關西)에서는 1874년 오사카와 코베를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되고, 1877년 2월5일에는 교토와 코베를 연결하는 철도가 영업을 개시했다.
1887년 7월에는 도쿄에서 쿄토와 오사카를 거쳐 코베에 이르는 600킬로미터의 도카이도(東海道)본선이 개통됐는데, 이 거리의 운행에는 약 21시간이 걸렸다. 이 운행시간을 줄이기 위해 1896년에 급행열차 운행이 시작되어 소요시간이 4시간 줄어든 17시간 22분이 되었고, 1906년에는 최급행(후에 특급)이 등장해 도쿄-코베의 운행시간은 12시간50분으로 단축됐다. 1921년에는 철도 노선을 수정해 특급열차의 운행시간이 11시간45분까지 줄어들었다.
일본의 초기 열차들은 번호로 구별되었지만 1929년에는 특급열차에 <후지(富士)>와 <사쿠라(櫻)>라는 애칭이 붙기 시작했고, 1930년에는 초특급 <쓰바메(燕)>가 등장, 도쿄-코베의 운행시간은 8시간37분까지 줄어들었다. 1937년 7월에는 도쿄-코베간 특급열차가 1일 5왕복이 확립될 정도로 도카이도본선의 여객과 화물 운송량이 크게 늘었다.
한편 코베에서 시모노세키에 이르는 약 528킬로미터의 산요본선(山陽本書)이 1888년 11월1일 코베-아카시 노선 개설을 시작으로, 1901년 5월27일 시모노세키까지 개통되었고, 이때부터 도쿄에서 시모노세키까지의 철도를 도카이도-산요본선이라고 불리며, 일본 여객과 화물 운송 철도의 대동맥이 되었다.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와 조선의 부산(釜山)을 연결하던 부관연락선은 1905년 9월11일 산요기선주식회사가 개설한 항로로, 일본의 철도 도카이도-산요간선(도쿄-시모노세키)과 조선의 경부선-경의선(부산-신의주)을 통해 중국 단둥으로 연결하기 위한 현해탄을 건너는 항로였다.
부산-시모노세키 사이의 거리는 240킬로미터로 연락선의 항해에 약 8시간이 걸렸다. 1920년대에 부관연락선에 투입된 산요기선회사의 선박은 코마마루(高麗丸, 1913.1-1931.5), 시라기마루(新羅丸, 1913.4-1942.6), 게이후쿠마루(景福丸, 1922.5-1944.10), 도쿠주마루(德壽丸, 1922.11-1944.10), 쇼케이마루(昌德丸, 1923.3-1943.7)의 5척이 있었다.
1926년 3월말 최승희와 이시이 무용단이 승선해 현해탄을 건넜던 부관연락선은 아마도 이 다섯 척의 연락선 중의 한 척이었을 것이다.
1926년 3월28일과 29일 2회에 걸친 부산공연을 마친 이시이 무용단은 신입단원 최승희와 함께 30일 아침 부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고, 그날 저녁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하는 산요본선의 야간열차에 올라, 3월31일 아침 코베를 경유, 그날 저녁에 도쿄에 도착했다.
이때 최승희가 기차로 여행한 경성-부산(440Km, 12시간)-시모노세키(240Km, 8시간)-코베(530Km, 11시간)-도쿄(600Km, 12시간)의 거리는 1,810Km로, 이 거리를 여행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3월26일부터 3월31일까지 5박6일, 기차 여행 시간만 따지면 총 43시간이었다.
최승희의 경성-도쿄 기차여행은 이후에도 상향과 하향을 번갈아가며 여러 번 반복되었다. 1927년 9월의 이시이 무용단의 경성공연에는 도쿄-경성-도쿄의 왕복 여행이 필요했고, 이 여행은 1928년 11월에도 반복되었다. 1929년 8월 최승희가 이시이 무용단을 졸업하고 경성으로 돌아올 때도 도쿄-경성의 기차여행을 통해서였다.
1933년 3월 최승희가 두 번째 도일로 본격적인 무용스타의 길을 시작했을 때도 이 기차여행을 통해서였는데, 이때는 남편 안막, 딸 승자와 함께였다. 이후 최승희는 도쿄를 비롯한 일본 공연을 계속해 일본 무용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1934년 9월22일의 제1회 무용공연에서 성공을 거둔 후, 1935년 5월1일 이시이 무용단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창립했고, 1935년 11월의 제2회 공연을 통해 무용계 톱스타의 발판을 마련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각종 시사잡지와 여성지들은 다투어 최승희를 표지모델로 사용했고, 그가 1936년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1936년 4월3-4일 최승희는 경성 부민관에서 공연을 가졌고, 이를 위해 제2차 도일 이후 3년만에 처음으로 도쿄-경성 기차여행을 단행했다. 4월1일에는 최승희의 무용영화 <반도의 무희(1936)>이 경성에서 개봉되었으므로, 이 영화의 홍보를 겸한 귀국이었으므로 말 그대로 금의환향이었다.
최승희는 1937년 2월 다시 한 번 도쿄에서 경성을 방문했는데, 이 방문은 세계순회공연을 떠나기 전에 가졌던 조선순회공연 때문이었다. 최승희는 2월20-21일 경성의 부민관에서 공연한 이후 인천, 대전, 목포, 여수, 광주, 전주, 군산, 진남포, 평양, 신의주에서 공연했다.
이 조선순회공연을 위해서도 철도를 이용했던 것은 당연하다. 인천공연(2월24일)은 경인선, 대전(25일)과 목포(26일) 공연은 호남선, 광주(28일)와 여수(27일) 공연은 경전선, 전주(3월1일)와 군산(2일) 공연은 전라선, 진남포(5일), 평양(6일), 신의주(7일) 공연은 경의선을 이용했다. 당시에도 철도 마일리지 적립제도가 있었다면, 최승희는 조선철도의 최우등 고객이었을 것이다.
한편 조선총독부는 1917년 7월 조선철도의 경영을 만주철도에 위탁했다가 1925년 4월 총독부 직영으로 전환했으나, 1933년 10월에는 청진 이북노선의 조선철도를 다시 만철에게 위탁했다. 남선의 철도는 조선총독부의 주관으로 부관연락선을 매개로 삼아 일본철도와 연결되게 하고, 북선 철도는 만철의 주도아래 대륙과 긴밀하게 연결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철도정책은 1931년 9월18일 일제가 만주를 침공한 이래, 본격적인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포석이었다.
1932년 일제의 만주 침략 직후 조선총독부는 조선철도에 2종의 급행열차를 도입했다. 히카리(ひかり, 1933.4)와 노조미(のぞみ,1934)였다. 이 두 열차는 부산잔교에서 경성, 평양, 안동, 봉천을 경유해 신경까지 운행했다.
1937년 일제가 중국을 침공한 이후 조선총독부는 급행열차 타이리쿠(大陸, 1938.10)와 코아(興亜, 1939.11)를 추가로 도입했다. 이 두 열차는 부산에서 봉천까지의 노선은 히카리, 노조미와 동일했으나 최종노선이 봉천-베이징이었다.
이에 더해 조선총독부는 1936년 말 경부선에 아카츠키(暁, あかつき)를 도입했는데, 이는 여객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특별급행, 즉, 특급열차였다. 아카츠키의 속도는 이전에 도입된 히카리와 노조미는 물론 나중에 도입된 타이리쿠와 코아보다 더 빨랐다.
히카라와 노조미는 부산-경성 사이를 10시간에 달렸으나 아카츠키는 같은 구간 운행시간을 6시간 45분에 주파했다. 경부선이 막 개통되었던 1905년 융희(隆熙)가 부산-경성을 달리는데 30시간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속도가 4배 이상 빨라진 것이다.
새로 도입된 아카츠키는 초고속의 초호화 열차였기 때문에 제작 및 운영비용이 엄청났을 것이다. 신속하게 수지를 맞추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아카츠키의 판촉과 홍보에 나섰는데, 요즘 표현으로 홍보대사 겸 모델로 선정된 것이 최승희였다.
1937년 2-3월의 조선순회공연을 위해 최승희는 2월17일 밤11시에 도쿄를 출발했다. 시모노세키까지 가는 7번(하행) 특급열차였다. 당시의 기차시각표에 따르면 다음날(18일) 오사카(오전10시45분)와 히로시마(오후5시9분)을 경유, 밤9시5분에 시모노세키에 도착했다.
시모노세키에서는 밤10시30분에 출발하는 관부연락선에 바로 승선할 수 있었고, 다음날 아침6시에 부산잔교에 도착했다. 부산잔교역에서는 6시50분발 아카츠키가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2월19일 오후2시5분에 경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최승희가 1926년 3월 처음으로 도쿄에 갔을 때, 경성-도쿄의 기차 여행에 총 43시간이 걸렸는데, 1937년 2월의 도쿄-경성의 여행에는 39시간이 소요됐다. 10년 만에 약 4시간이 줄어든 것인데, 그 대부분은 아카츠키가 도입된 덕분이었다. 급행열차로 10시간이 걸리던 부산-경성의 여행시간이 특급열차 아카츠키가 도입된 이후 6시간45분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때 최승희의 부산잔교-경성역 여행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조선총독부가 1937년 3월25일에 발행한 사진집 <반도의 근영(半島の近影)>의 1쪽에 부산잔교에 도착한 관부연락선 곤고마루(金剛丸)의 모습과, 아카츠키 열차의 전망차 앞에서 포즈를 취한 최승희의 사진이 그것이다.
플랫폼에 최승희와 나란히 서 있는 여성은 그의 제자 김민자이고, 남편 안막과 딸 안승자는 기차를 탄 채 최승희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안막과 안승자 부녀의 모습 아래에 <아카츠키>라는 열차 이름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사진집에는 또 한 장의 최승희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같은 책 4쪽의 하단에 실린 사진은 아카츠키의 전망차 내부의 모습인데, 사진 중앙의 안락의자에 앉은 것이 최승희다. 그 오른쪽 옆이 딸 안승자가 앉았고, 사진 맨 오른쪽의 양복 입은 남자가 아마도 남편 안막일 것이다.
이 사진집은 4쪽에 특급열차 <아카츠키>와 급행열차 <히카리>의 사진을 나란히 편집했다. 설명문을 읽어보면 <아카츠키>와 <히카리>, 그리고 <노조미>를 모두 “초특급”열차라고 소개했지만, 공식 분류에 따르면 아카츠키는 특별급행(=특급), 히카리와 노조미는 급행열차였다.
한편 최승희의 커피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이 두 장 더 있다. 한 장은 <아카츠키>의 식당차에서 최승희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담았고, 다른 한 장은 <조선호텔>의 프랑스 식당 <팜코트>의 일광실(Sun Room)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진이다.
최승희가 손에든 <아카츠키> 식당차의 커피잔과 <조선호텔> 식당의 커피잔의 모습이 같은데, 이는 둘 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직영했던 식당이기 때문이다.
아카츠키 식당차의 거피 사진의 최승희 의상은 전망차 사진의 의상과 완전히 일치하므로, 이 사진도 2월19일에 촬영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호텔> 썬룸의 커피 사진에서는 최승희가 머리에 쓴 모자는 같은 모자인데, 드레스는 달라졌다. 전망차 사진에서 안승자는 일본식 키모노를 입은 모습이었으나, <조선호텔> 썬룸 사진에서는 한복 차림이다.
이것은 최승희 일행이 경성 공연을 위해 <조선호텔>에 투숙했기 때문이었다. 경성에는 최승희와 안막 양가의 부모님의 집이 있기는 했으나, 두 사람은 공연장에서 가까운 <조선호텔>에서 숙박하기로 했던 것이다.
따라서 경성역에서 내린 최승희 일행이 호텔에 체크인하고 나서 편한 옷으로 갈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사진 촬영을 위해 <아카츠키>에서는 안승자에게 일본식 키모노를 입혔지만, 경성에 도착해서는 한복으로 갈아입혔던 것임에 틀림없다.
이 사진들이 1937년 2월19일에 촬영된 것임이 명백하다. <아카츠키>가 경부선에 도입된 것은 1936년 12월1일이며, 그 이후 최승희가 경성을 방문한 것은 1937년 2월19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도의 근영>의 발행일이 1937년 3월25일이므로, 다른 시기에 이 사진들이 촬영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리고 이날 촬영한 사진이 많은 편인 데다가 사진의 구도가 좋고 선명한 것으로 보아 이 사진들은 전문 사진사가 찍은 것임에 틀림없고, 아마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새로 도입된 <아카츠키>의 홍보를 위해 최승희를 사진 모델로 섭외했었기 때문일 것이다.(jc,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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