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선 선생의 한국의 철도에 대한 강연을 듣고, 이를 정리하며 복습하는 과정에서, 조선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철도여행이 머릿속에 겹쳐지곤 했다.
최승희 선생이 조선과 일본과 중국, 유럽과 미주에서 순회공연을 했던 것은 192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까지였으므로 그의 주요 교통수단은 바다에서는 여객선이었고 육지에서는 철도였다. 항공기가 보편적인 여객 수송의 수단이 된 것은 1950년대 이후이기 때문이다.
최승희가 조선 순회공연에 나섰던 1929-1933년 경인선과 경의선과 경부선, 호남선과 경전선, 군산선과 전라선, 경원선 등 철도를 이용했던 사실은 신문보도를 통해 거듭 확인됐다. 버스로 이동했던 유일한 공연은 춘천 공연이었다. 경춘선 철도는 1939년에야 가설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일본 순회공연에서도 홋카이도에서 큐슈와 오키나와, 타이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거의 대부분 철도를 이용하곤 했다. 예컨대 그의 1935년 홋카이도 순회공연에서는 남북으로는 하코다테에서 삿포로와 아사히카와를 거쳐 나요로까지 기차로 여행했고, 동서로는 오타루에서 삿포로와 치토세를 거쳐 쿠시로까지 철도여행을 한 바 있었다.
나는 2019년 최승희의 일본공연을 조사하면서 최승희 선생의 삿포로 순회공연을 되짚어 본 적이 있었다. 하코다테에서 삿포로를 경유해 나요로까지의 기차여행은 신칸센 바로 아래 급의 쾌속열차였음에도 불구하고 약 8시간과 1만5천엔(당시 약 16만원)이 들었다. 또 삿포로에서 쿠시로까지도 쾌속열차로 4시간의 시간과 1만엔(당시 약 10만원)의 경비가 들었다. (홋카이도에는 2023년 현재, 아직까지도 신칸센이 운행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가장 빠른 일본 열차인 신칸센을 이용하면 시간은 현저하게 줄지만 비용은 크게 증가한다. 도쿄에서 홋카이도의 하코다테까지, 혹은 도쿄에서 큐슈의 하카타까지는 각각 신간센으로도 약 5시간이 걸리고, 기차삯은 2만3천엔(오늘날 약 20만원) 내외가 든다.
신칸센의 속도는 열차 종류와 구간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가장 빠른 것이 300Km/h의 산요 신칸센이고 가장 느린 것이라 하더라도 조에쓰 신칸센의 240Km/h였다. 최승희 선생은 이보다 약 3분의1의 속도로 달리던 기차를 주로 이용했을 것이기 때문에 도쿄에서 큐슈까지 약 15시간씩 기차를 타야했을 것이다.
미주에서도 최승희 선생은 뉴욕에서 시카고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대륙횡단 열차를 탄 적이 있었다. 1938년 2월의 제1차 미국순회공연 때와 1940년 2월부터 4월까지의 제2차 미국순회공연 때였다.
당시 뉴욕에서 시카고까지의 철도연장은 1,546Km로 1940년 당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던 평균 시속 97킬로미터의 쾌속열차 <20세기 리미티드(20th Centry Limited)>로도 16시간이 걸렸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약 3천마일(약 4천8백Km)을 여행하는 데에는 요즘도 가장 빠른 열차로도 3박4일이 걸리는 반면, 비행기로는 5시간 정도 걸릴 뿐이다.
최승희 선생이 육지에서 기차 대신 비싼 비행기를 탔던 것은 남미순회공연 때뿐이었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칠레나 페루 등의 나라는 영토 면적이 워낙 넓어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에 기차로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최승희 선생의 중국순회 공연에서도 주로 기차를 이용했다. 센양과 지린 등의 만주지역과 베이징, 상하이와 광뚱 등지의 중국내 대도시 공연을 위해서는 주로 열차를 이용해야 했다. 땅이 넓고 이동거리가 먼 것은 남미와 비슷했지만, 1940년대까지도 중국에서는 여객 항공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최승희 선생은 순회공연 동안에는 공연 시간을 빼면 기차를 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정도였다. 이같은 최승희 선생의 빈번한 기차 이용 상황을 파악한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1936년 고속열차 아카츠키의 운행을 개시하면서 최승희 선생에게 홍보대사를 맡아주도록 부탁한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jc,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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