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철도 건설 경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은 그것이 일본 ‘정부’와 미국 ‘기업’의 대결이었기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침략과 대륙 침공을 목표로 치밀하게 조선철도 건설에 뛰어든 반면, 미국은 기업 영리를 추구하는 데에 그쳤던 것이다.
이 시기에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 때문이었다. 카리브 해에서는 쿠바가 10년 전쟁(1868-1878)과 1879-1880년의 무장봉기로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지만, 1895년 재차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은 이들에게 자금과 무기를 공급하면서, 카리브해에서 스페인을 몰아내려고 했다.
1898년 쿠바로 파견된 미국 전함 메인호가 2월15일 밤 아바나 항구에서 폭발과 함께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은 이 사고를 스페인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4월11일 스페인을 공격함으로써 미국-스페인 전쟁이 시작됐다. 7월17일 쿠바를 장악한 미국은 7월25일 푸에르토리코까지 점령함으로써 카리브해에서 스페인군을 축출했다.
미국은 스페인의 아시아 식민지도 공격했다. 미해군은 1898년 5월1일 마닐라 만 해전에서 스페인 함대를 격파했고, 6월20일 괌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1898년 8월12일 워싱턴에서 평화의정서가 서명되어 전쟁이 끝났고, 전후 처리를 위해 12월10일의 파리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필리핀과 괌, 푸에르토리코와 쿠바를 포함하는 스페인의 식민지들을 획득, 각 지역에서 미군정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즉, 일본이 한반도와 중국에 눈독들이고 있는 동안, 미국은 스페인 식민지를 빼앗는 데에 집중했고, 아시아에서도 스페인령 필리핀과 괌을 차지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다. 즉,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미,일 양국은 1905년 7월29일,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를 인정하고, 미국이 일본의 조선 식민침략을 양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태프트-카쓰라 밀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고, 그로부터 한 달 후에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으로 전락시켰다.
한편 고종의 아관망명으로 한반도 내 영향력을 키웠던 러시아도 일본 세력이 약화되자 해군을 철수시켰다. 러시아는 한반도보다 만주와 랴오뚱 반도에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아시아의 부동항을 얻기 위해서였다. 러시아는 1891년 3월9일부터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1904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의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와 함께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랴오뚱 반도 진출을 저지한 후, 러청밀약(1896년 6월3일)을 맺고 뤼순항과 다롄만을 조차했다. 1898년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하얼빈에서 장춘과 센양, 안산을 거쳐 다롄까지 연결하는 동청철도를 건설하고 만주를 차지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이어 아시아에서도 부동항을 확보함으로써,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관심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반도에 대한 러일 협상에서도 북위 39도선 분할론을 제안해 일본의 북진을 막으려는 정도였지만, 러일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한반도는 완전히 일본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뤼순항을 차지한 러시아는 별로 불만스럽지 않았다.
이같은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 왕실과 정부가 권력 생존을 위해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도움을 구걸했던 것은 무지한 일이었다. 조선 정치가들은 이 제국주의 국가들이 침략 국가들이라는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동학과 의병 등의 민중과 재야 유생들은 외세를 배격하고 자력의 부국강병을 주장했지만, 권력투쟁과 민중착취에 골몰한 조정과 왕실은 민중과 재야의 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했다.
조선 왕실과 조정이 독자적으로 철도건설을 계획했던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철도를 건설할 기술은 물론, 재정이 전혀 없었고, 그것이 외세 의존을 야기한 근본적인 문제였다.
더구나 철도 건설이 민중의 지지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민중을 착취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향후 철도에 대한 조선 민중의 태도는 적대감과 저항 일변도였다. (jc,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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