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1868) 이후 정한론이 대두되었고, 일본 국내 철도 가설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철도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조선을 침략하고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조선에 철도를 가설하고 이를 일본이 차지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경인철도 가설을 위해 먼저 나선 것은 미국이었다. 1883년 6월23일 미국 정부는 독변교섭통상사무 민영목을 통해 제물포와 한강의 수심 측량 허가를 받았고, 1887년 2월9일 조선영사 프레이저(E. Frazar)가 김윤식에게 “전등 및 철도 신설계획의 요청” 공문을 보낸 바 있었다.
또 고종은 1891년 3월 이완용과 이하영을 시켜 주한미국전권공사인 기업가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와 “철도창설조약”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는데, 모스는 미국공사 알렌(Horace N. Allen)의 도움을 통해 경인선 부설권을 얻으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한편 일본 정부도 철도 부설권을 얻고자 청일전쟁 중이던 1894년 8월 갑오경장 쿠데타 세력인 김홍집 내각을 들러리로 세워 '조일잠정합동조관'을 체결했다. 여기에는 재정이 없는 조선 정부를 대신해 일본 정부가 경인선과 경부선 철도를 부설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청일 전쟁 직후 삼국간섭(1895년 4월23일)으로 한국에서 철도 부설권을 독점하려던 일본의 시도는 좌절되었다. 일본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상황에서, 고종의 아관망명 50일 만인 1896년 3월29일 고종은 철도부설권을 제임스 모스에게 승인했다. 이는 조선 철도에 대한 최초의 특허권 부여이자, 미국인이 조선정부로부터 얻어낸 최초의 이권이었다.
한국정부가 모스와 체결한 “경인철도특허조관”에는 특허일로부터 12개월 내에 기공, 3년 안에 준공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특허의 효력이 상실된다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스는 특허권 시한을 일주일 앞둔 1897년 3월22일 경인철도 기공식을 거행했다. 특허권 유지를 위한 고육책이었다. 기공식 사진을 찍은 것도 특허권 박탈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노선 선정과 부지 마련, 노동력 확보 등의 모든 면에서 모스를 지원했다. 이는 고종의 한국 정부가 철도를 절실하게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백성들의 피해는 컸다. 헐값에 토지를 수용당하고, 값싼 노임으로 철도부설 공사에 동원됐기 때문이었다. 조선인들이 철도에 반감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조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모스는 경인철도 건설에 두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인천에서의 부지 확보가 어려웠고, 미국에서의 자금 마련에 난항을 겪었다. 인천에서의 부지 확보가 어려웠던 것은 일본조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토지 수용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는 모스의 경인철도를 방해하려는 일본 정부의 지시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모스가 미국에서 경인철도에 필요한 투자 확보에 실패한 것도 일본의 방해공작 때문이었다. 미국내 일본 공관들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으로 조선 상황이 불안하므로 투자가 위험하다는 흑색선전을 계속했다. 조선의 불안한 정세는 대부분 일본이 조성한 것이므로, 이는 악의에 찬 선동이었지만, 그게 정치이자 외교였다. 미국 투자자들은 모스의 경인철도에 투자하기를 꺼렸고, 모스는 경인철도 완공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었다.
자금과 부지 확보에 실패한 제임스 모스는, 특허권 유지를 위해 기공식을 단행했지만, 기공식의 장소조차 부지 확보에 실패한 종착역 제물포가 아니라 우각현으로 정해야 했다. 또 마감 일주일 전의 기공식으로 간신히 유지된 특허권을 일본에 팔아넘기기 위해 제임스 모스 자신은 정작 기공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일본은 경인철도인수조합을 결성해 조선정부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제임스 모스와 경인철도양도계약을 체결했고 1898년 12월17일 사정가격 170만2천엔을 모스에게 지불하고 경인철도 부설권을 매입했다. 이후 일본은 1899년 4월23일 두 번째 기공식을 제물포에서 가진 후 신속하게 공사를 완결, 1899년 9월18일 노량진-제물포간 33.8Km의 경인철도 임시영업을 시작했다.
경인철도 부설을 놓고 벌인 미국과의 경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이다. (jc,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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