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선생의 강연 내용은 따로 요약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강연은 적확하고 간결해서 이해가 어렵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강연의 언설 표현도 작품의 문장처럼 문학적이었습니다. 문학작품을 요약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
그 대신 빨치산이라는 말에 얽힌 제 개인 경험을 서술하는 것으로 대신했고, 제게 깊은 감명과 함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일본 시인 마키무라 고의 “간도 빨치산의 노래”라는 작품을 소개드리기도 했습니다.
빨치산이라는 말은 원래 프랑스어 빠르티장(partisan)에서 온 말이고, 이는 다시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이탈리아어 방언 빠르티지아노(partigiano)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정당(parti) 사람(s-an), 즉 정당인이라는 말이죠.
즉, 빠르티장은 주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주류가 아니므로 소수이고, 다른 의견을 주장하기 때문에 전투적인 사람들이 바로 빠르티지아노, 혹은 빠르티장이었던 것이지요.
이 말이 군사용어로 ‘비정규군’을 가리키는 말로 전화됐습니다. 특히 1914년 스페인 시민들이 게릴라전으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격퇴했을 때, 이 비정규군을 빠르티사노(partisano)라고 불렀습니다. 또 2차대전 중에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에 저항했던 프랑스의 비정규군도 레지스탕스 혹은 빠르티장이라고 불렸습니다.
한국에서 빨치산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비정규전투원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한국전쟁 중에는 물론 종전 후에도 상당기간 지리산을 중심으로 계속 활동했던 비정규전투요원들이 대부분 공산주의혁명을 목표로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빨치산의 연원은 독립투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마도 소련의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러시아어의 빠르띠잔(партиза́н)에서 음차된 것이 바로 한국말 빨치산이 됐던 것이겠지요.
지금도 연해주에는 빠르띠잔스크(Партиза́нск)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동쪽으로 17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이 도시의 전체 인구는 약 5만명인데, 고려인도 약 3천5백명이나 거주하는 곳입니다.
빠르띠잔스크의 원래 이름은 한자이름 소성(蘇城) 혹은 소창(蘇昌)에서 유래한 수찬(Сучан)이었으나, 1972년 중국어 잔재를 청산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빠르띠잔스크로 개명했습니다.
이는 '빠르띠잔의 도시'라는 뜻인데, 레닌의 공산혁명이 성공한 직후 러시아 백군이 중국과 일본군 등의 지원으로 러시아 적군과 대립할 때, 이 지역의 빨치산들이 백군과 일본군을 패퇴시켰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이름입니다.
빠르띠잔스크는 또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독립투사 한창걸은 러시아군 장교로 복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띠잔스크를 거점으로 삼아, 고려인 빨치산을 조직해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한창걸의 지휘 아래 고려인 빨치산 부대는 1922년 올가만 해방전투에서 승리하고, 그해 10월 일본군을 연해주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한창걸은 적군과 백군사이의 내전이 끝날 때까지 고려인 빨치산 연합조직인 고려혁명군정청 위원으로 복무했습니다.
‘빨치산’이라는 말이 주로 공산주의 혁명을 목표로한 비정규전투부대원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는 했으나, 내용상으로는 조선과 대한제국 시기의 ‘의병’, 동학혁명의 ‘농민군’, 일제강점기의 ‘독립군’, 광주항쟁시기의 ‘시민군’과 같은 말입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무능한 정부가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의병, 농민군, 독립군, 시민군 등의 빨치산이 무기를 들고 일어나, 외적을 물리치는 데에 앞장섰던 전통이 있습니다. (jc,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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