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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14학교

[대륙14학교] 13. 김동기 강연 (2) 전쟁과 통제

지정학이 강대국의 영토 게임을 위한 이론이라는 사실은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1) 소수의 강대국이 게임의 주체이고 나머지는 게임의 대상이라는 점, (2) 게임 대상이 게임 주체가 될 방법은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3) 게임의 결과는 전쟁과 내부통제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김동기 선생의 말마따나, 이 지정학 게임은 철저하게 힘에 기반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경제력과 외교력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력에서 나옵니다. 지정학의 입장에서는 종교나 이데올로기도 아무 의미 없는 표면적 소도구에 불과한 것이지요.

 

 

게임 대상이 게임 주체로 올라서려고 노력한 예가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입니다. 이 두 체제는 독일인 칼 하우스호퍼의 4개 범지역론(Theories of 4 Pan-regions)에 기반을 두고 서로 연결됩니다. 하우스호퍼가 범지역론을 주장한 것은, 라첼의 활동공간(Lebensraum) 이론과 일본 사회의 특징을 결합한 것입니다.

 

다른 초기 지정학자들은 대개 세계를 2개의 세력으로 양분했습니다. 씨파워와 랜드파워, 하트랜드와 림랜드라는 식이지요. 그러나 하우스호퍼는 2개 세력을 4개의 범지역으로 확대했는데, 그것은 독일과 일본이 끼어들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세계를 4분해서 미국과 러시아와 함께 독일과 일본도 각각 하나씩 차지하려는 시도는 비극적인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패전한 독일이 4개국에 의해 분할 당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패전한 일본대신 조선이 양분된 것이 바로 한국의 비극입니다.

 

독일이 제3제국을,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려했던 시도는 제2차대전에서 73백만명의 사망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전사자만 계산한 숫자입니다. 민간인 사망자와 기아와 기근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2차 대전 중에 최고 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됩니다. 당시 세계인구의 3%에 해당하고, 일본의 전 인구가 몰살당한 셈이지요.

 

지정학적 게임의 주체가 되려다 실패한 일본과 독일의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1) 게임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치즘과 군국주의처럼 엄청난 통제사회를 만들어야 하지만, (2) 기존의 게임주체들의 견제로 성공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나마 일본과 독일은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사용가치 때문에 명맥은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지정학의 최종 결과인 수퍼파워는 유토피아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통찰입니다. <1984(1948)>가 그의 증언입니다. 이 소설은 시대 배경이 2차대전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세계는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와 동아시아로 3분되어 대외적으로는 전쟁, 대내적으로는 통제가 가속화됩니다.

 

<1984>는 지정학적 국제정치에 대한 조지오웰의 통렬한 비판입니다.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1945)>을 통해 소련 공산정권의 독재와 부패상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1984>는 소련 비판이 아니라 영미 비판입니다. 이 작품은 2차대전 종전 후, 즉 나치 독일과 군국 일본이 패망한 후에 집필되었고, 내용도 영미의 주도로 성립한 오세아니아에서 전개되는 내부 사정을 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세아니아에서 벌어지는 일은, 소련을 모델로 한 유라시아와 중국과 일본을 합쳐서 모델로 한 동아시아에서도 똑같이 벌어짐을 암시합니다. 이 세 나라는 상대를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국경 분쟁을 일으키기 때문에 상시적인 전쟁 상태입니다. 그리고 각국은 끔찍한 수준의 내부 통제를 실시합니다. 전쟁은 내부통제의 수단이고, 내부통제는 전쟁의 수단인 것이지요.

 

이게 조지 오웰이 예측한 지정학적 세계관의 결말입니다. 세계가 지정학적으로 정리되고 나면 그 결과가 참담해진다는 뜻입니다. 상시적인 전쟁은 평화를 희생시키고, 철저한 내부통제는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기 때문이지요.

 

 

지정학 선구자들과 현대 지정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이론화할 때, 조지 오웰이 예상한 디스토피아를 염두에 두었을까요? (jc, 2023/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