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대륙학교에 14기로 입학했습니다. 많은 망설임 끝에 입학했으나, 일단 시작한 김에 잘해보려고 마음 먹습니다. 강연도 답사도 가능한 한 최대한 참석하려고 합니다.
지난주 화요일(9월19일) 첫 강의가 끝나고 첫 애프터에 갔을 때 동석해 주신 선배들 중에 ‘개근’을 자부하신 분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개근할 운명은 아닙니다. 중국 답사도 갈 수 없는 일정이 있고, 일부 강의도 빼먹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게으름으로 강의와 답사를 건너뛰는 일은 없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대륙학교에 입학 했다고 하니까, 좋은 강의를 중계하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개인 사정으로 이번에 입학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요청입니다. 그래도 될 것인지, 그럴 수 있을 것인지를 약간 고민한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파악한 각 강의의 핵심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개강과 함께 참석한 첫 강의는 김준형 선생의 “국제질서의 대격변과 미국의 전략과 한국의 선택”이었습니다. 제목으로 보아도 (1) 국제질서의 대격변이 무엇인지, (2) 미국의 전략이 무엇인지, (3) 한국의 선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파악하면 강의의 요점을 파악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질서의 대격변”이란, 김준형 선생에 따르면, “신냉전”입니다. 미국의 민주당 정권이 신냉전을 조성할지 예상하지 못했지만, 지금 바이든 정부가 이끌고 있는 것은 신냉전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은 정확히 신냉전입니다. 신냉전을 통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고, 일본은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거머쥐는 것이 목적입니다.
한국의 선택은 애매합니다.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미국의 중간자로서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추구하려고 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종속되기를 선택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적대정책은 실리를 잃는 것이지만, 미국의 보호막 아래서 명맥은 유지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미국도 한국을 장기판의 졸로 부려먹을 수 있으니 싫을 리 없죠.
윤석열 정부가 한국을 미국의 졸뿐 아니라 일본의 졸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 대해 비판이 많습니다만, 막을 방법도 없죠? 탄핵이 유일한 방법이겠지만, 민주당 안에 수박들이 사사건건 윤석열 정부의 역성을 드는 한, 이 경향은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김준형 선생이 가장 우려하신 것은 신냉전 그 자체가 아닙니다. 7-80년대의 냉전 체제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했던 <한미일 군사동맹>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냉전 체제에서는 한미와 미일의 군사동맹은 유지됐지만 한일 군사동맹은 실패했습니다. 20세기의 한일간 악연 때문이지요.
그래서 냉전체제에서도 한일 관계는 약한 고리였고, 이 약한 고리를 이용해 한국은 일본을 능가할 가능성도 가졌습니다. 군사와 통상에서 한국이 일본을 능가한다면, 동북아에서 세력관계는 달라질 수 있겠지요. 특히 한국이 중국,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윤석열은 지난 25년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면서, (1) 갓파더 미국, (2) 중간보스 일본, (3) 행동대원 한국이라는 위계 질서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프놈펜 회동에서 합의되고 캠프 데이빗 회동에서 결정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일련의 회동으로 향후 5년간 일본은 미국의 승인아래 군사비를 2배로 늘리고, 미사일과 해외파병의 선택권을 쥐게 됩니다. 일본의 군사비가 2배가 되면, 일본 군사비는 세계3위가 됩니다. 한국과 북한이 힘을 합치지 않는 한, 한반도는 일본의 군사적 영향권 안에 들어갑니다.
저는 이점이 가장 우려됩니다. 일본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그 결과는 무시무시할 것입니다. 종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 동원 문제, 심지어 독도 영유권의 문제 해결은 일본에게 주도권이 넘어갑니다. 왜냐고요? 미국이 승인했기 때문이죠.
한미일 군사동맹은 미국의 숙원이었다고 합니다. 동아시아를 미국의 영향권에 확실히 묶어두기 위해서는 한일 간의 약한 고리를 군사협정의 강한 쇠사슬로 묶어야 했던 것입니다.
한일 군사협정이란 간단히 말해, 한국에 갈등이 있을 때 일본군이 한반도에 다시 진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요청 여부와 상관없이 일본의 판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일본에 군사 분쟁이 생겨도 (미군이 진주하고 있는 한 그럴 가능성도 업지만) 한국군은 일본 땅에 진주할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불평등 군사조약인 것이지요.
일본의 군사력을 2배로 늘려준 것, 미사일을 보유하고 해외 파병을 가능하게 해 준 것,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주할 가능성을 열어 준 것이 윤석열 정부의 최대 치적(?)입니다.
이것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70년 만에 얻어낸 성과를 미국이 절대로 되돌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독도 근해에서 한미일 군사훈련이 이뤄지는 것이 가시적인 결과지요.
김준형 선생의 전망도 암울합니다. 이미 시작된 한미일 군사동맹을 되돌릴 수 있는 정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현상황에서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수구세력은 일본식 내각제로 전환해 향후 절대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과 같은 대통령이 나오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또 한 가지 문제는 한국 시민들이 정부와 시민을 헷갈리는 경향입니다. 한국내 상황에서는 시민들의 반정부 운동을 당연시 하면서도, 유독 외국 정부-시민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시민운동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는 20세기와 21세기를 통틀어 거의 자민당, 그것도 대부분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극우세력이 집권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시민이 모두 극우 정치세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군국주의가 지배할 때 일본이 얼마나 피폐했는지 알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반군국주의 시민세력이 수적으로 열세이고 노령화되었다는 점입니다.
한국 시민들은 이점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활동의 목표로 고려하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일본 극우정부를 반대하는 것은 좋은데, 일본 내 양심적인 민주화세력과 연대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일본 시민이지 한국 시민이 아니거든요.
아베 정부가 한국에 경제제재를 강행했을 때 한국 시민들이 일제 불매운동을 벌였습니다. 소부장의 전략적 부문에서는 한국의 성장이 이뤄지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일반 소비재의 불매운동은 별 효과 없이 끝났습니다.
일본정부의 극우 군국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시민뿐입니다. 그래서 한국 시민은 일본 정부에 반대하면서도 일본 시민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더 자주 가고, 더 자주 오게 하고, 한일간 시민들의 교류와 협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특히 양국 젊은이들의 교류와 협력은 앞날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미국과의 관계는 더 미묘합니다. 한국 시민들의 대일 인식과는 달리 대미 인식은 전통적으로 우호적입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여기서도 정부와 시민사회를 구별하지 못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미국에 네오콘 정부가 들어서면, 그 난장을 견제할 유일한 세력은 미국의 유권자들입니다. 네오폰 정책을 지연시키거나 투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유일한 세력이니까요.
한국 시민이 미국 대사관 앞에 가서 시위를 하거나 백악관 앞에 가서 피케팅을 하는 것은 상징적 효과는 주겠지만, 실제적 효과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투표권을 가진 미국 시민과 교류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김준형 선생도 지적하신 것이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을 기다려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급물살을 타지만, 북중러의 삼각동맹은 수동적이고, 대응적이며, 속도가 조절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자국의 이익 때문입니다.
이들이 기다려 주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신냉전 정책이 한국 시민들의 극렬한 반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음 정권이 교체될 것인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다음 정권도 극우가 집권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북중러의 삼각동맹을 결성하면서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응할 것입니다. 신냉전입니다.
그때가 위험한 시기입니다.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신냉전이 고착화될 것입니다. 한국은 주도적인 결정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때가 한반도의 진짜 위기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한 번의 잘못된 투표가 만든 결과입니다. 에혀~ (jc, 202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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