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14학교 (62) 썸네일형 리스트형 [대륙14학교] 30. 배은선 강연 (3) 미국과 일본의 경인철도 경쟁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1868) 이후 정한론이 대두되었고, 일본 국내 철도 가설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철도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조선을 침략하고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조선에 철도를 가설하고 이를 일본이 차지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경인철도 가설을 위해 먼저 나선 것은 미국이었다. 1883년 6월23일 미국 정부는 독변교섭통상사무 민영목을 통해 제물포와 한강의 수심 측량 허가를 받았고, 1887년 2월9일 조선영사 프레이저(E. Frazar)가 김윤식에게 “전등 및 철도 신설계획의 요청” 공문을 보낸 바 있었다. 또 고종은 1891년 3월 이완용과 이하영을 시켜 주한미국전권공사인 기업가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와 “철도창설조약”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는데, 모스는 .. [대륙14학교] 29. 배은선 강연 (2) 경인철도 기공식이 있기까지 한국철도의 슬픈 역사는 고종의 애비 대원군과 그의 마누라 민씨의 정권 투쟁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어린 고종의 섭정으로서 풍양조씨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타파한 대원군은 그 대신 여흥민씨의 세도정치를 초래했다. 역설적인 것은 대원군이 불러들인 여흥민씨 세도정치로 왕비가 된 민씨와의 권력투쟁에서 대원군 자신이 패배했다는 점이다. 1878년 고종의 친정 시작으로 권력에서 쫓겨난 대원군은 고종의 무능과 외척의 세도정치로 나라가 문란해지고 있다며 개탄하던 중, 훈련도감의 구식군대가 일으킨 임오군란(1882)을 이용해 민비가 양성한 사병 별기군을 제압하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일본 공관의 방관과 청나라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임오군란이 진압되고 청나라가 군대를 철수하자, 친일파 김옥균과 박영효 등이 일본.. [대륙14학교] 28. 배은선 강연 (1) 이 한 장의 사진 대륙학교 14기의 6번째 강연은 철도박물관장 배은선 선생의 “대륙철도의 역사와 의의”였다. 한국철도의 역사와 대륙철도 연결의 의미를 살피는 시간이었다. 이 강연은 세 가지 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1) 한국철도는 자발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려주었고, (2) 철도의 관점에서 한국은 이미 대륙국가임을 환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3) 초기 한국철도는 비록 일본의 한반도와 대륙 침략 목적으로 부설되었지만, 한민족이 철도 건설의 자발성과 대륙성을 회복하면 남북한의 공존과 번영의 수단이 될 것임을 인식시켜주었다. 배은선 선생의 강연은 한국철도의 시작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됐다. 이 사진의 존재는 일찍부터 알려졌으나, 그 역사적 의미는 최근 배은선 선생에 의해 제대로 해석되었다. 이 사진은 1897년 3월.. [대륙14학교] 27. 이병철 강연 (3) 아쉬움과 <무용신> 시민운동이 할 일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이루고 싶은 목표를 추진할 정부를 선출하는 것과 한국 정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국 정부의 시민운동과 연대하는 것입니다. 자국 정부조차 제대로 선출하지 못하는 한국 시민운동이 외국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외국 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그 정부를 선출하는 그 나라의 시민들입니다. 따라서 한국 시민운동은 외국 시민운동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강화해야 하는 것이지요. 짧은 기간이나마 은 일본 시민단체와 협력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모든 일본 시민이 일본 정부를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일본 시민들의 수가 적고, 일본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미미할 뿐입니다. 일본 자민당 정부의 극우 정책을 지지하는 극우 시민들도 .. [대륙14학교] 26. 이병철 강연 (2) 시민의 일과 정부의 일 이병철 선생의 강연대로 남북관계 개선의 앞날이 상당 기간 불투명해졌습니다. “희망을 변주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게 또 한국인의 특성입니다. 동학과 의병, 독립군과 임시정부와 의열단, 반독재 학생혁명과 반쿠데타 민주화투쟁, 광주항쟁과 시민혁명을 거쳐 박근혜 탄핵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은 도대체가 포기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지난한 노력이 성공해 본 적도 없습니다. 동학도, 독립운동도, 친일파 청산과 민주화도, 성공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성공했다면 윤석열 정부 같은 것이 선출될 리 없겠지요. 특히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노력은 70년째 경주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국제정치와 국내 정파간 권력투쟁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만, 시민운동에도 원인이 있다.. [대륙14학교] 25 이병철 강연 (1) 세 가지 아쉬움 대륙학교 14기의 다섯 번째 강연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이병철 선생의 “북한의 이해”였습니다. 정식 제목은 조금 긴데, “내일의 북한: 희망을 변주해 나갈 수 있을까?”였습니다. 글이나 강연의 제목은 명확하면서도 약간은 모호한 것이 좋습니다. 주제를 알릴만큼 명확하면서도 호기심을 일으킬 정도로 조금은 모호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병철 선생의 강연 제목이 그렇습니다. 북한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희망’과 ‘변주’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하더군요. 제목이 이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되니까 강연에도 집중하게 되더군요. 제가 대륙학교 강연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아니고 “정리”할 뿐입니다. 전체 강연을 빠짐없이 요약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배울 거리와 생각거리를 정리하는.. [대륙17학교] 24. 이원영 강연 (4) 나의 고지혈 이원영 선생의 건강법 강연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운동에 대한 언급이 적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강연 시간이 모자라서 생략되었겠지만, 저는 식사와 치병만큼 운동도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즉, 이원영 건강법이 식사와 치병의 양대 지주로 떠받쳐져 있다면, 저는 거기에 운동을 더해서 삼발이식으로 만들면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치병법에 대해서는 제가 뭔가 코멘트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경험으로든 책으로든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까요. 다만 어떤 질병이든 화학 약물의 남용을 피해야 한다는 이원영 선생의 조언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개인적 경험도 조금 작용했습니다. 수년 전 건강검진에서 고지혈 수치가 경계선에 있다는 결과를 통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스타틴을 복용하든지, 유산.. [대륙17학교] 23. 이원영 강연 (3) 저탄고지 제가 이원영 건강법의 충실한 제자인 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야단맞는 분야가 있습니다. 이원영 선생으로부터 “탄수화물 좀 작작 X먹어라”는 핀잔을 자주 듣습니다.^^ 제가 국수를 좋아합니다. 장터국수와 칼국수, 파스타와 볶음국수, 우동과 소바, 포와 팟타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설탕을 퍼먹지 그래?” 하는 면박을 받아도 국수를 포기할 수 없더군요. 국수 중독은 아마도 40대에 시작했던 마라톤 때문이었을 겁니다. 매일 10Km 달리고, 대회를 앞두고는 20Km씩 연습했습니다. 인터넷이나 마라톤 클럽 동료들은 파스타를 적극 권했습니다. 탄수화물이 충분해야 완주할 에너지가 생긴다는 설명이었지요. 센트럴파크에서 열렸던 마라톤대회에서는 골인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베이글을 두 개씩 바나나와 함께 나눠주곤 했습니다. .. 이전 1 2 3 4 5 6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