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륙14학교

(62)
[대륙14학교] 38. 박환 강연 (1) 임시정부 전사 대륙학교 14기의 7번째 강연은 박환 선생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임시정부의 성립과 운용, 변천과정, 이동경로 등을 살피면서, 현재의 대한민국과의 연관성과 의미를 확인하는 강연이었다고 이해된다. 흔히 임시정부라고 하면 ‘삼일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가 떠오르게 되는 것이 ‘상식’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임시정부 구성 노력이 있었고, 일부는 발족까지 되었었다. (1) 미주 : 최초의 임시정부 논의는 일제 강점이 시작되기 직전 1909년 7월6일에 시작됐다. 미국의 한인교포들의 단체인 의 기관지 가 “현정부가 일본에 투항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은즉, 우리는 인민의 정신을 대표하여 우리의 복리를 도모할 만한 정부를 세울” 것임을 천명한 바 있었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10년 9월21..
[대륙14학교] 37. 배은선 강연-외전 (5) 최승희와 대륙횡단철도 대륙횡단철도라면 우리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떠올린다. 남북철도를 다시 연결하려는 노력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해 물류를 원활하게 하려는 관심 때문인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실제로 남북철도 복원 사업도 진행되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손기정 선생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했었기 때문이다. 1936년 6월4일의 는 손기정, 남승룡을 포함한 일본육상 대표단 선발대가 6월3일 오후3시10분에 경성역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쿄에서 출발한 것은 6월1일 저녁이었을 것이다. 이는 최승희가 경성공연을 위해 여행했던 경로와 같다. 손기정과 남승룡 선생이 경성에 도착했을 때,..
[대륙14학교] 36. 배은선 강연-외전 (4) 최승희와 경의선과 경원선, 그리고 만철 최승희는 1937년을 분주하게 보냈다. 이 해에 금강산을 소재로 한 무용영화 를 제작했고, 미주와 유럽 순회공연이 계약되어 연말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순회공연을 위해서 준비할 것이 많았다. 순회 공연에서 발표할 작품들을 창작하고, 조선과 일본, 그리고 중국 각지의 팬들에게 해외순회공연을 알리기 위한 고별 공연도 해야 했다. 고별공연은 팬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공연을 하고 떠나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도구(渡歐)고별공연”이라는 이름으로 단행된 이 순회공연은, 3년 동안 해외공연을 해야 하니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 공연이자 ‘성원을 부탁한다’는 당부의 공연이었다. 첫 번째 고별공연은 일본에서였다. 도쿄에서 가까운 순서로 나고야(1937/1/20-26), 교토(1/27-2/..
[대륙14학교] 35. 배은선 강연-외전 (3) 최승희와 경부선 1926년 3월25일 최승희는 경성역에서 10시 정각에 출발하는 경부선 상행8호 급행열차 2등석에 올라 도쿄 유학길에 올랐다. 자신을 신입단원으로 받아준 이시이 바쿠 무용단과 함께였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였으므로 도쿄로 가는 열차가 상행선, 도쿄에서 멀어지는 열차가 하행선이었다. 경성과 인천 공연을 마친 이시이 무용단은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 대구와 부산에서도 공연을 가졌으므로, 최승희의 첫 도쿄행 기차여행은 조선에서 2차례나 단속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경부선(경성-부산), 부관연락선(부산-시모노세키), 산요본선(시모노세키-고베), 도카이도본선(고베-도쿄)의 철도를 이용하는 긴 여행이었다. 일본의 첫 철도는 1872년 9월12일 수도 도쿄의 신바시(新橋)에서 항구도시 요코하마의 사쿠라기초(桜木町)을 연결하는..
[대륙14학교] 34. 배은선 강연-외전 (2) 최승희와 경인선 기록에 나타난 조선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최초의 기차여행은 1922년 5월26일의 숙명여학교 수학여행이었다. 당시 최승희는 만10세로 숙명여학교 1학년생이었다. 1922년 5월29일의 는 이 수학여행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경성사립숙명여학교 고등과 학생 183명과 초등과 생도 333명은 직원15인의 인솔 하에 ... 래인(來仁, 인천을 방문)하여 시가(市街)와 동,서공원, 그리고 관측소와 축항(築港) 및 기타 여러 곳을 순람(巡覽=차례로 관람)하고 당일 하오6시15분 인천역발(發) 열차로 귀교하였다더라.” 이 기사에는 ‘수학여행’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이런 식의 학생 여행은 1910년대부터 수학여행이라고 불렸다. 1914년 1월11일의 는 “숙명여학교에서는 직원과 생도 일동 89명이 수학여행하기 위..
[대륙14학교] 33. 배은선 강연-외전 (1) 최승희의 기차 여행 배은선 선생의 한국의 철도에 대한 강연을 듣고, 이를 정리하며 복습하는 과정에서, 조선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철도여행이 머릿속에 겹쳐지곤 했다. 최승희 선생이 조선과 일본과 중국, 유럽과 미주에서 순회공연을 했던 것은 192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까지였으므로 그의 주요 교통수단은 바다에서는 여객선이었고 육지에서는 철도였다. 항공기가 보편적인 여객 수송의 수단이 된 것은 1950년대 이후이기 때문이다. 최승희가 조선 순회공연에 나섰던 1929-1933년 경인선과 경의선과 경부선, 호남선과 경전선, 군산선과 전라선, 경원선 등 철도를 이용했던 사실은 신문보도를 통해 거듭 확인됐다. 버스로 이동했던 유일한 공연은 춘천 공연이었다. 경춘선 철도는 1939년에야 가설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일본 순회공연에서..
[대륙14학교] 32. 배은선 강연 (5) 대륙철도 청나라와 러시아의 견제를 뚫고 조선 강점을 진행시키던 일본은 철도 부설에서도 미국과의 경쟁을 제치고 조선 철도를 모두 손아귀에 넣었다. 일제가 조선철도를 필요로 했던 것은 조선 강점에 머물지 않고 대륙 침략을 위해서였다. 따라서 일제는 한편으로 경부선(부산-경성)과 경의선(경성-의주)을 부설해 중국의 단둥으로 연결되도록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원선(경성-원산)과 함경선(원산-회령)을 부설해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되도록 했다. 대륙으로 연결되는 제3의 노선으로 일제는 1939년 만포선(순천-만포)을 개설했다. 지금은 북한에서도 평양에서 묘향산에 가기 위해 활용하는 정도에 그친다고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만포에서 센양, 창춘, 지린, 하얼빈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철도의 역할을 ..
[대륙14학교] 31. 배은선 강연 (4) 조선과 필리핀 나눠먹기 조선철도 건설 경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은 그것이 일본 ‘정부’와 미국 ‘기업’의 대결이었기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침략과 대륙 침공을 목표로 치밀하게 조선철도 건설에 뛰어든 반면, 미국은 기업 영리를 추구하는 데에 그쳤던 것이다. 이 시기에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 때문이었다. 카리브 해에서는 쿠바가 10년 전쟁(1868-1878)과 1879-1880년의 무장봉기로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지만, 1895년 재차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은 이들에게 자금과 무기를 공급하면서, 카리브해에서 스페인을 몰아내려고 했다. 1898년 쿠바로 파견된 미국 전함 메인호가 2월15일 밤 아바나 항구에서 폭발과 함께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은 이 사고를 스페인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4월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