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일본 열도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맹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는 주장이라고 본다.
봉건시대의 백성은 땅에 묶여있었다. 백성의 농사 소출에서 세금을 거두는 것이 곧 지배자들의 소득이었다. 일본 열도의 소출로 나누어줄 세금이 마르자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공해 거기서 거둘 세금을 지방 군주들에게 약속한 것이다.
조선 왕도 마찬가지였다. 공자니 맹자니, 유교니 불교니 떠들었지만, 조선 왕조가 탐했던 것은 백성의 세금이었을 뿐이다. 그 세금을 왜가 빼앗으려 하자 외세를 끌어들여서라도 그 세금을 지키고자 했다. 조선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출병한 명나라 군대는 조선을 지켜봐야 딱히 자기들에게 떨어질 세금이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니므로 전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인 것은 서로 빼앗으려는 땅과 백성이 전쟁 통에 황폐해졌다는 점이다. 농사를 짓지 못하는 땅은 황무지로 변했다. 임진왜란 전에 1백만결에 달했던 조선의 경작지는 전쟁이 끝난 후 30만결이었다. 땅이 3분의1로 줄어든 것이다. 그것이 전쟁의 효과이다.
땅과 함께 백성도 줄어들었다. 1천만 명에 달했던 조선의 백성들은 전란 통에 1백만명이 죽었다. 침략한 일본도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간신히 영토를 지킨 조선 왕조도 농작지의 3분2를 잃었고, 농사를 지을 백성 열 명 중 한 명을 잃었다.
이래도 저래도 별 소득이 없는 명나라 군대는 조선반도의 남쪽의 3개도(경상, 전라, 충청도)를 일본에 주어버리자는 강화조약을 추진했다. 일본도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고, 조선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계속되었고, 더 많은 백성이 죽었다.
이 모든 죽음은 땅과 백성, 세금에 대한 지배층의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그것은 당연히 인간의 욕심에 의한 인위사, 즉 사람이 만든 죽음이었다. <칼의 노래>에는 인위사 혹은 사고사의 상대어로 ‘자연사’가 자주 등장한다. 주로 이순신의 생각과 독백 속에서다.
그런데 이순신이 말하는 ‘자연사’는 상식적인 뜻이 아닌 것 같다. 보통의 자연사란 늙어 죽는 것을 가리킨다. 전사와 사고사는 자연사가 아니다. 병사의 경우는 애매하다. 질병이 자연의 행위라고 본다면 자연사이겠지만, 그 질병이 인위적인 역병 때문이라면 인위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의 자연사란 전투 중에 적군에 의해 사망하는 것을 가리켰다. 심범섭 선생이 지적해 준 ‘자연사’는 <칼의 노래>에 모두 5번 등장한다. 이순신은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64쪽)”라고 했고, “나는 나의 자연사로서 적의 칼에 죽기를 원(275쪽)”한다고 했다.
그는 또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왕이 보낸) 면사첩을 끌어내려 불 아궁이 던”지면서도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으며, “적탄에 쓰려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314쪽)”이라고 했다. 노량해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이순신은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341쪽)”고 했다.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이순신이 자신의 전사를 자연사라고 했던 까닭이 무엇일까? 심범섭 선생은 <칼의 노래>에서 ‘인간’ 이순신과 ‘무인’ 이순신이 자주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자연과 인간이 대비되고, 인간이 다시 무인과 대비되는 이순신의 사고 체계에서는 자연과 무인이 같은 입장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런 논리에서라면 무인이 자기 군주에 의해 살해되는 것은 인위사이지만, 적군에 의해 전사하는 것은 자연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조선 장병들의 전사도 자연사로 보았을까? 탈영했거나, 조선군을 배신했다가 이순신에게 목베임을 당한 조선병졸의 죽음은 어떨까? 이순신의 함대에 수장당한 수만명의 왜군의 죽음은 자연사일까?
이순신의 ‘자연사’ 개념은 지금도 내 머리 속에 약간의 혼란을 남기고 있다. (2023/3/6, jc)
'강릉 감상모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의 노래] 3. 펼치는 페이지마다 ‘죽음’ (0) | 2023.03.06 |
---|---|
[칼의 노래] 2. 칼의 울음과 노래 (0) | 2023.02.26 |
[칼의 노래] 1. 두 번째 감상 모임 (0) | 2023.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