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칼의 노래>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임진왜란이 많은 조선인의 죽음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전사와 민간인 학살에서부터 한산의 병영과 칠천량 함대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방식과 유형은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칼의 노래>를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조선 백성이 엄청 죽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죽었는지 밝힌 정부 통계나 학계의 조사연구 결과도 없었다. 그러나 <칼의 노래>에는 숱한 죽음들이 서술되어 있었고 그 대부분은 <난중일기>의 인용이었다.
실제로 <칼의 노래>에 인용된 백성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간략하고도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그 서술의 내용을 상상해 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다음은 13쪽부터 시작되는 <칼의 노래> 본문의 첫 세 장(30쪽까지)에 서술된 죽음의 기록이다.
[14-15쪽, 인육 썩는 고린내; 16쪽, 아이들의 인육; 19쪽, 칠천량 전멸; 20쪽, 조선 수군의 팔할 파괴; 21쪽, 원균, 이억기, 최호 사망; 22쪽, 절벽처럼 확실한 죽음; 24쪽, 칠천량; 25쪽, 적의 승려 목베기; 26쪽, 진주성 전투, 김천일, 최경회, 황명보, 이종인, 관민 5천여 사망; 28-29쪽, 권율과 칠천량.]
<칼의 노래> 13-30쪽까지 첫 3개장의 18쪽에서 죽음의 묘사가 없는 페이지는 5쪽 뿐이었다. <칼의 노래>는 죽음에 관한 책이었고, 대부분의 죽음은 조선군과 조선백성의 죽음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99쪽부터 시작되는 1개 장을 더 조사했는데, 죽음을 건너뛴 페이지가 없다.
[99쪽, 백성들을 씨가 마르도록 도륙; 100쪽, 시체에 벌레가 들끓어 역질; 101쪽, 적의 시체 2천여구, 조선 여자의 시체 다섯 구; 102쪽, 적장 몸시중 조선여인 투신; 103쪽, 죽은 여자(여진)의 머리채; 104쪽, 굶어죽고 병들어죽은 피난민 시체 20여구; 105쪽, 시체가 묻힌 구덩이; 106쪽, 시체를 묻음, 밀고자 세 명의 목을 벰; 107쪽, 벤 머리를 구덩이에 묻음.]
임진왜란 동안 조선인은 얼마나 죽었을까? 공식 통계는 없는 듯 했다. 학계에서도 이 주제에 대해 조사한 연구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간접 자료들을 통해서 임진왜란의 사망자 수를 추정해 보기로 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웹사이트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에 따르면, 조선 건국(1392) 시기에 약 6-7백만 명이었던 조선 인구는 16세기 중반 9백만-1천만 명까지 증가했지만 16세기 말 임진왜란(1592년)까지 정체기를 맞았다고 한다. 그것이 밭농사 중심의 조선 전기 농업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인구였을 것이라고 했다.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임진왜란(1592-98년) 동안 조선군 희생자가 26만명이었다. 민간인 희생자는 제대로 집계되지 않았지만 추정자에 따라 최저 46만명에서 최고 75만명으로 사망자 수는 다양했다. 따라서 70만명 내지 1백만명의 조선인이 임진왜란으로 사망한 것이다. 1천만명의 인구에서 10%, 즉 조선인 열 명의 한 명이 임진왜란 중에 사망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 중에서 가장 참혹했다는 한국전에서 남한의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가 각각 15만명과 37만명이었고 북한의 사망자는 군인 29만명, 민간인 40만명이었다. 남북한의 사망자를 합치면 약 1백30만명이었다.
한국전과 임진왜란의 사망자 수가 1백만명으로 비슷했다고 해도, 1950년의 인구가 약 2천만명으로 임진왜란 직전의 1천만명보다 2배가 많았으니, 임진왜란의 인구대비 사망자 수는 한국전 때의 거의 2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 조정이 조사한 것은 살아남은 인구가 아니라 세금을 거둘 전답의 결수였다. 백성이 죽어나간 것은 문제가 아니었고, 왕과 관리를 먹일 세금만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 왕조의 그런 정부가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그런 왕의 그런 조정 아래서 전투를 치르고, 전쟁을 이긴 것이니,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2023/3/5,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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