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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감상모임

[칼의 노래] 2. 칼의 울음과 노래

책 제목이 <칼의 노래>이므로 작품 속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16세기 조선의 무장, 그것도 전쟁 중의 장군 이야기라면 근접 살상무기로서의 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칼은 자주 중층적 의미로 등장한다.

 

칼이 사람을 죽이는 날선 도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자신의 칼을 존망이 명멸하는 세()의 마당(176)”이라고 분명히 인식했다.

 

 

칼은 무력 뿐 아니라 영향력 일반을 가리키는 상징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이순신의 거처를 가리키면서 저자는 두 자루의 환도와 면사첩이 걸린 토방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이순신은 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121)”이라며 경계의 상징으로 삼았다.

 

제목은 칼의 노래지만, 작품 속에서는 언제나 울음으로 묘사됐다. 심범섭 선생은 작품 전체를 통해 칼이 울었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다섯 번(17, 60, 165, 274, 298) 나온다고 했다. 이 다섯 번은 모두 징징징이라는 의성어와 함께였다. 칼이 징징징 울 때마다 이순신의 적의와 살상 의지가 끓어올랐다.

 

그 적의는 당연히 침략군인 왜군에 대한 것(298)이었지만, 때로는 배설 같은 배신자들에 대한 것(60)이거나, 전쟁에 소극적인 명나라 군대에 대한 것(274)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적의는 아들 면을 죽인 왜병에 대한 사적인 것(165)이었는가 하면, 무의미 일반에 대한 포괄적인 것(17)이기도 했다.

 

 

이순신의 칼이 만능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칼끝을 겨누지 못하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이었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일군이 퇴각하고, 명군도 돌아갈 예정이니, “함대를 해산하고 군사를 풀어헤쳐서 고향으로 돌아가라(273)”고 명령했다.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마당에 선조의 칼이 이순신을 겨누기 시작한 것이다.

 

이순신은 자신의 칼로 벨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았다. 그는 길삼봉은 강력한 헛것(41)”이었고 길삼봉은 임금 자신일 것(42)”인데, “내 칼은 보이지 않는 적을 벨 수 없었다(42)”고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는 또 더 넓은 의미에서도 칼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 나갈 수 없는 곳(106)”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칼로 막아낼 수 없는 그것이 헛것이라는 것이다.

 

 

조선 조정은 헛것을 정밀하게 짜맞추어 충()과 의()의 구조물을 만들어 가고 있었고 이순신은 헛것의 무내용함과 눈앞에 절벽을 몰아세우는 매의 고통 사이에서 여러 번 실신(14)”했다. 그리고 그 헛것에 의해서 이순신은 다시 세상 속으로(24)”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출정에서 임금이 하사한 환도와 면사첩을 버리고, 백성이 만들어준 칼을 챙겼다.

 

이순신은 자신의 칼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칼의 차이도 잘 알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무()는 권()을 장악하고 상()을 장악하는 천하의 칼(297)”이었지만, 이순신의 칼은 조선 국왕의 살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바로 그 임금을 보호하기 위해 왜군을 베어야 했고, 결국 왕의 칼보다 적군의 칼에 죽기를 바라는 조선의 칼이었다.

 

 

나는 본문의 칼의 울음이 제목에서 칼의 노래로 바뀐 것이 의아했다. 심범섭 선생과 잠깐 이야기했지만, 결론을 내지 않았다. 책 판매를 위한 출판사의 방책이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의 언어에서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나 개와 원숭이 같은 가축은 울 뿐이다. 유일하게 노래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일부 조류와 곤충뿐이다. 그것도 인간의 귀에 듣기 좋고 흥()이나 수()를 불러일으키는 새소리와 곤충소리만 선별적으로 노래라고 부른다.

 

선조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칼은 울었을 뿐이다. 4백년 후의 소설가 김훈에 의해 노래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이순신의 칼이 울었던 그 울음뿐이 아니었던가 싶다. (2023/2/26, 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