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의 조선무용 <천하대장군(1937)>은 장승을 의인화해 당시의 현실을 풍자한 작품이다. 1937년 9월27일 일본 도쿄극장에서 열린 도구(渡歐)고별공연에서 초연됐고, 1938-1940년의 세계 순회공연에서도 지속적으로 상연됐다.

장승은 절이나 마을의 입구에 나무나 돌로 세운 기둥으로, 상단부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겼다. 장승은 경계를 나타내거나 거리를 표시하는 이정표 역할을 했고, 험상궂거나 우스꽝스런 얼굴 모습이 외세를 배격하거나 악귀를 쫓아낸다고 믿어졌다.
조선 말기의 장승은 보통 남녀 한 쌍의 모습으로 세워졌는데, 남자 장승의 몸통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여자 장승에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고 쓰곤 했다.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일반적이지만 드물게 돌장승도 발견된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육지의 돌장승이 특화된 것이라고 한다.

장승은 벅수라고도 불리는데, 일부 역사가들은 장승과 벅수는 원래 서로 다른 조형물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장승은 삼국시대 이래 파발의 역참에 세워진 이정표였고, 벅수는 절과 마을에 세워진 축사(逐邪)의 기둥이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장승과 벅수가 혼동되었다고 한다.
장승과 벅수가 혼동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라고 한다. 일제 당국이 장승과 벅수를 모두 미신으로 규정하고 이를 거칠게 말소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 과정에서 장승과 벅수의 차이점은 경시되거나 무시되었고, 결국 조선 전역에서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승희가 <천하대장군>을 안무했던 1930년대 중반에는 장승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고, 극히 일부만 남은 장승도 미신의 상징으로 경시되었던 시기였다. 즉, 최승희는 일제가 정책적으로 말소하려 했던 조선의 민속을 되살려 작품화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1938년 1월22일 커뮤니티 플레이하우스 극장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공연에서는 <천하대장군>이 2분 4연목으로 상연됐다. 현지 신문들은 이 작품의 제목을 <텐카 다이쇼군(Tenka Daishogun)>이나 <조선의 장군(Korean General)>이라고 표기했는데, <텐카 다이쇼군>이란 <천하대장군>의 한자를 일본식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1940년 1월8일자 <뉴스위크>는 이 작품의 제목을 "해 아래 가장 위대한 장군(Greatest General Under the Sun)"이라고 직역하기도 했다.

한편 재미 조선인 교포신문인 <신한민보>는 이를 <장승춤>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천하대장군>이 장승을 소재로 한 작품임을 분명히 밝혔다. 1938년 2월10일의 <신한민보>는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4. 장승춤: 검고 긴 수염을 양쪽으로 달고 번쩍번쩍하는 붉은 의복을 입고 버티고 서 있는 품도 장하려니와 걸음을 옮길 때 딱딱 소리가 나는 것도 또한 한 멋이다. 전체로 보아 이 춤은 조선 같으면 아이들이 어비가 왔다고 울음을 끝치고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갈 만치 된 춤이다.”

<천하대장군>은 1938년 2월2일의 로스앤젤레스 공연, 2월20일의 뉴욕 공연에서도 상연됐고, 11월6일의 뉴욕 2차 공연에서는 <거만한 전사(Pompous Warrior)>라는 제목으로 상연되었다. 이 작품은 1939년 1월31일의 파리 공연에서도 상연됐는데, 이 공연의 프로그램은 <천하대장군>을 “자신이 최고로 강하고 똑똑하다고 뽐내는 장군을 비웃는 환상적인 작품”이라고 해설했다.
파리 공연 프로그램의 해설은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천하대장군>은 조선의 지배층이 공리공론에 빠져 거만하고 수구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일제의 침략을 막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긴 것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은 일본제국에 대한 풍자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일본이 지금은 군사력을 믿고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면서 거만한 태도를 취하지만, 자만과 허세는 곧 굴욕과 수치로 바뀔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다. <텐카 다이쇼군>이라는 일본식 제목이 일본의 집권자인 ‘텐노’와 군국주의 세력인 ‘쇼군’을 한꺼번에 지칭하기 때문이다. (jc, 2026/5/9)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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