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개봉됐다. 소니 픽처스가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배급한 영화다. <케데헌>이라는 준말로 불리면서 세계를 휩쓴 이 영화는 2026년에 2개의 골든 글로브상(주제가 부문과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과 2개의 아카데미상(주제가 부문과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받았고, 2029년경에 속편이 제작될 예정이라고 발표됐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는데, 반년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승희 100장면>의 ‘무당춤’ 원고를 쓸 때였다. <케데헌>은 최승희의 조선무용 공연을 연상시켰고, <케데헌>의 주제가 <골든>은 최승희의 <무당춤>의 재현으로 느껴졌다.

<무당춤>은 1935년 10월 22일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최승희의 제2회 도쿄 공연에서 초연됐다. 그보다 반년 전에 열렸던 나고야 공연(1935년 5월 9일, 나고야시 공회당)에서 상연되지 않은 것을 보아, <무당춤>의 완성 시기는 1935년 5월에서 10월 사이였을 것이다.
제2회 도쿄 공연에서는 극장 히비야 공회당에서 <무당춤>의 사진이 브로마이드로 판매됐다. 입장권과 함께 나란히 촬영된 <무당춤> 사진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 사진 속의 최승희는 공작 깃털을 꽂은 높은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부채, 다른 손에는 요령(搖鈴)을 든 모습이다. 최승희의 <무당춤> 사진은 일본과 조선, 세계 순회공연이 열렸던 곳곳에서 발견됐다.

1936년 9월 22일에 개최된 최승희의 제3회 도쿄 공연의 팸플릿에는 <무당춤> 사진이 안팎으로 게재됐다. 1937년 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진행된 교토 다카라즈카 극장 공연과 1937년 7월에 열린 도호쿠 순회공연의 프로그램에도 <무당춤> 사진이 표지에 실렸다.
최승희의 <무당춤> 사진은 각종 잡지에도 등장했다. <부녀계(1936년 4월호)>와 <주부지우(1937년 2월호)> 등의 여성잡지, <무용 일본(1936년 9월호)>이나 <음악신문(1936년 상순호)>과 같은 문화예술 잡지, <정계왕래(1936년 12월호) 등의 시사잡지, <아사히그라프>나 <카메라그라프> 등의 사진 잡지, <주간아사히>와 <선데이마이니치> 등의 주간잡지, <삼천리(1936년 12월호)> 등의 조선의 종합잡지에도 <무당춤> 사진이 실렸다.

20세기의 후반부가 텔레비전의 시대였다면 전반부는 잡지와 라디오의 시대였다. 특히 일본의 잡지는 일본과 조선, 만주와 북중국, 타이완과 동남아시아까지 배포되었고, 발행 부수가 1백만 부가 넘는 잡지도 많았다. 최승희의 무용 사진은 이러한 잡지에 실려 매월 혹은 매주 일본 제국에 퍼져 나갔고, <무당춤>은 초연 이후 1-2년 만에 최승희의 대표작으로 알려졌다.
<무당춤>은 유럽과 남북 미주에도 널리 알려졌다. 1938년 1월 22일의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전후로 신문 기사와 광고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진이 <무당춤>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공연에서 상연된 15개 작품 중에서 영어 제목이 <포츈 텔러(Fortune Teller)>, 일본어 제목이 <팔괘를 보다(八卦見)>라고 소개된 작품이 <무당춤>이다.

<무당춤>의 사진은 1938년 1월 17일, 샌프란시스코 인근 도시 마데라의 일간지 <마데라 트리뷴(Madera Tribune, 1면)>과 나파(Napa) 카운티의 일간지 <나파 저널(Napa Journal, 1면)>에 가장 먼저 게재됐다. 이 사진의 오른쪽 하단에 유나이티드 프레스(United Press)라는 표시가 보인다. 이 사진이 UP 통신사를 통해 배포되었다는 뜻이다. 최승희의 공연 기획사가 UP 통신을 통해 홍보를 시작했고, 여기에 사용된 사진이 <무당춤>이었다.
최승희의 <무당춤> 사진은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미국 동부의 펜실베이니아주의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Pittsburgh Post Gazette, 1938년 1월 17일, 1면)>, 남부인 노스캐롤라이나주 헨더슨 카운티의 <헨더슨 데일리 디스패치(Henderson Daily Dispatch, 1938년 1월 18일, 6면)>에도 등장한다. 최승희의 <무당춤> 사진은 1938년 2월 28일 자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 1938년 2월 28일, 28면)>에도 실렸다.

<무당춤> 사진이 배포된 것은 미국뿐이 아니었다. 이 사진은 이탈리아의 <스탐파 세라(Stampa Sera, 1938년 1월 29일, 25면)>지, 프랑스의 <르 그랑 에코 뒤 노르(Le Grand echo du Nord, 1938년 1월 30일, 22면)>지, 스위스의 <르임파시알(L'Impartial, 1938년 2월 3일, 1면)>지, 네덜란드의 <아른헴셰 쿠란트(Arnhemsche Courant, 1938년 2월 8일, 7면)>지 등 유럽의 일간지에도 광범위하게 게재됐다. 또 <무당춤> 사진은 1940년 4월의 푸에르토리코 공연과 그해 10월의 멕시코 공연의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다.
최승희의 초기 대표작인 <에헤야 노아라(1933)>, <승무(1934)>와 <검무(1934)>보다 늦게 초연된 <무당춤(1935)>이 세계 순회공연 초기에 가장 널리 홍보되면서 인기를 얻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케데헌> 현상의 원인과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르와 양식과 매체의 차이를 제쳐둔다면 <무당춤>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내용상의 특징을 공유한다.

<케데헌>의 주인공인 3명의 헌트릭스는 귀신을 잡는 사냥꾼들이다. 이들의 임무가 퇴마(退魔)라는 점에서 이들은 여사제들이며, 이는 한국말로 '무당'이다. 세 명의 무당은 케이팝 공연을 통해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 공연은 무당의 '굿'이다. 헌트릭스의 케이팝 공연이 굿이라면, 90년 전의 최승희의 조선무용 공연도 굿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의 조선 사회와 2020년대의 한국 사회는 완전히 다른 사회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에 신음하던 조선 사회와 그 백성들이 직면했던 문제는,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 온 한국 사회와 그 시민들이 마주한 문제와 매우 다르다. 그러나 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굿’의 방식이다.

문제에 직면하면 한국인은 원인을 안과 밖에서 동시에 찾는다. 외부의 적은 귀마(鬼魔)나 외세(外勢)이고, 내부의 적은 자신의 부정(不淨)과 부족(不足)이다. 내외의 적은 서로 연관된다. 자기 부족이 외세를 부르고 자신의 부정이 귀마를 부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족을 충전하고 부정을 정화하는 동시에 외세와 귀마를 물리쳐야 한다. 이것을 스스로 해낼 수 없을 때 무당에게 도움을 청한다. 물적 세계와 영적 세계를 연결하는 무당의 사명은 사람들이 일상의 위기와 공동체의 재난을 극복하게 돕는 것이다.
무당은 노래와 춤으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그 의식이 ‘굿’이다. 춤과 음악으로 ‘굿’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헌트릭스의 케이팝 공연과 최승희의 조선무용 공연은 공통된다.

90년 전의 조선무용이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고, 오늘날의 <케데헌>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것이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고, 그 해결 방식을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식 무당의 역할은 미국식 슈퍼 히로와 다르다. 슈퍼 히로는 환상적인 만큼 그 역할이 비현실적이지만, 한국식 무당은 미신적인 외피를 가졌으면서도 그 역할은 결과적으로 현실적이다.
최승희는 세계 순회공연을 위해 25개의 조선무용을 준비했다. 1937년 9월 27-29일 도쿄극장에서 개최한 도구(渡歐) 고별 공연에서 이 작품들이 상연되었다. 그중 17번째 작품인 <무당춤>은 미국과 유럽과 남미에서 가장 자주 상연됐다. 헌트릭스의 <골든>이 <케데헌>의 주제가이듯이, 최승희의 <무당춤>은 조선무용의 대표작이었다. 다음은 <골든> 가사의 일부이다.

“나는 두 개의 삶을 살았어,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려 했지./ 하지만 내 자리를 찾을 수 없었어./ ... / 더는 숨지 않아, 이제 난 빛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빛나고 있어./ ... / 우린 올라가, 올라가, 지금이 우리의 순간. (I lived two lives, tried to play both sides,/ But I couldn't find my own place./ I'm done hidin' now I'm shinin' like I'm born to be/ ... We're going' up, up, up, it's our moment)”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인이지만 일본인 취급을 받아야 했던 최승희는 헌트릭스처럼 두 개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최승희는 가는 곳마다 <무당춤>을 추며 굿을 벌였다.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메시지가 그녀의 춤사위를 통해 세계로 퍼져 나갈수록, 최승희는 고양되었고 결국 세계적인 조선의 무희라는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최승희를 ‘한류 원조’라고 부르는 데에는 일리가 있다. <무당춤>이 그런 예이다. 90년 전에 상연되었던 최승희의 <무당춤>은 오늘날 <케데헌>의 주제가인 <골든>의 전조(前兆)였던 것이다. (jc, 2025/11/18; 2026/3/30)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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