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1930년 12월10일, 7면)>는 12월6일의 <벌교극장> 낙성식의 연회에서 “조선 기생의 무용” 등이 공연됐다고 보도했고, <조선일보(12월14일, 7면)>도 “조선명창 이화중선(李花中仙, 1898-1943) 형제의 성악”이 공연되었다고 전했다.
<부산일보>가 “조선 기생”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화중선이 어린 시절 남원권번에 기적을 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이화중선 형제”란 이화중선(李花中仙, 1899-1943)과 이중선(李中仙, 1903-1935) 자매를 가리킨다. 이화중선-이중선은 김초향(金楚香(1900-1983)-김소향(金小香, 1911-1934) 자매처럼 명창 자매로 알려져 있다.
이화중선의 본명은 이봉학(李鳳鶴)으로 1899년 목포(남교동 12번지)에서 출생했다. 5세경 벌교와 부산을 거쳐 13세에 남원으로 이주, 남원권번에 기적을 두고 판소리를 배웠다. 15세에 장득진(張得眞, 1884-1928)의 첩으로 출가했고, 17세에 소리 공부를 위해 순창으로 이주했다.
23세에 경성활동을 시작한 이화중선은 1923년(25세)에 조선물산장려회가 경복궁에서 주최한 전국명창대회에서 <심청가> 중 “추월만정”을 불러서, 당시 명창 배설향(裵雪香, 1895-1938)을 제치고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추월만정”은 가을 달빛이 뜰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심청이 황후가 되어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탄식하는 대목이다.
이화중선의 “추월만정”은 1930년 임방울(林芳蔚, 1905~1961)이 매일신보사의 내청각에서 열린 조선명창연주회에서 <춘향가>의 “쑥대머리”를 부르기 전까지 판소리 사상 최고의 인기곡이었다. “쑥대머리”는 옥에 갇힌 춘향이 몽룡을 그리워하며 신세를 한탄하는 대목으로, “쑥대머리”가 실린 임방울의 음반은 조선과 일본과 만주에서 120만장이 팔린 밀리언셀러였다.
이화중선은 1928년 장득진이 사망하자 임실군 오수에 내려와 지내다가, 1931년 이재삼과 재혼했다. 1932년 경성 활동을 재개했고, 1933년 5월 김초향, 박록주(朴綠珠, 1905-1979), 김소희(金素姬, 1917-1995) 등의 여류 명창들과 함께 조선성악연구회 창립에 참여했다.
이화중선은 임방울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은 음반을 녹음한 명창이다. 〈춘향가〉 중 '옥중가'(Taihei C8256-A 春香傳 東風歌(上) 李花中仙), 〈심청가〉 중 '선인따라 가는데'(Victor Junior KJ1018-A 沈淸傳 泣血登仙, 李花中仙 杖鼓韓成俊),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Taihei C8279-A 興甫傳 제비路程記(上)(下) 李花中仙 長鼓李化成), 〈수궁가〉 중 '토끼 화상 그리는 대목'(Regal C321(2 22097) 水宮歌 龍王歎息하는데(下) 李花中仙 鼓韓成俊), 〈적벽가〉 중 '군사설움 대목'(Okeh 1705 三國誌 高堂上(下) 李花中仙 長鼓金宗基)의 음반이 남아 있다.
이화중선의 소리에 대해서는 순천의 문인 이영민(李榮珉, 1881-1962)이 <벽소시고(碧笑詩稿)>에서 "금쟁반에 온갖 구슬 똑똑 떨어져 울려대니(金盤滴滴萬珠鳴), 알알이 봄바람과 가을 달로 화하는구나(顆顆春風秋月生)"라고 예찬한 바 있다.
이중선은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의 동생이자, 고수 이화성(李化成)의 여동생이다. 20대에 언니 이화중선과 함께 전북 고창군 풍류객들의 모임인 율회의 회원으로 활동했고, 30세(1932) 무렵 대동아창극단이 함경남도 원산에서 공연했을 당시, 이화중선이 이도령 역, 이중선이 춘향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이중선도 많은 음반을 남겼다. 단가 〈호남가〉(Chieron Record 62-A 短歌 湖南歌 李中仙 長鼓金玉眞)와 〈천하태평〉(Okeh K.1625-A 短歌 天下泰平 李中仙 長鼓金宗基), 〈춘향가〉 중 '옥중상봉 대목'(Okeh K.1625-B 春香傳 獄中相逢歌 李中仙 長鼓金宗基)과 '쑥대머리'(Chieron Record 63-A 春香傳 獄中歌, 李中仙 長鼓金玉眞), 〈적벽가〉 중 '군사설움 대목'(Chieron Record 62-B 三國誌 古堂上鶴髮兩親 李中仙 長鼓金玉眞) 등의 음반이 전하는데, 언니 이화중선과 함께 노래한 〈춘향가〉 중 '사랑가'의 병창은 명반으로 꼽힌다.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명창들 (오른쪽부터) 한성준, 임방울, 이화중선, 정정렬, 박녹주, 김소희
이화중선의 창은 막내동생 이화성이 고수로 반주되곤 했는데, 1930년 12월6일의 <벌교극장> 공연에도 이화중선-이중선-이화성의 3남매가 초청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jc, 20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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