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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935다카라즈카

[다카라즈카1935공연] 6. 대극장 공연

최승희의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이 쉽게 이루어진 행사가 아니라는 점을 살펴보았는데, 과연 그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카라즈카 대극장의 공연 일정을 조사했다.

 

최승희가 1차 간사이(關西)공연을 단행했던 것은 19351025(오사카)26(고베)였다. 만일 최승희가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을 오사카와 고베공연에 가깝게 기획했다면, 그 날짜는 1025일 직전이거나 1026일 직후였을 것이다. 그런데 도쿄2차공연이 1022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공연일의 범위는 1024일이거나 1027일로 좁혀진다.

 

 

그런데 <다카라즈카가극 40년사(1954:103-104)>에 수록된 19359월부터 11월까지의 다카라즈카 대극장의 공연 일정에 따르면, 다카라즈카소녀가극단의 하나구미(花組)91일부터 24일까지, 츠키구미(月組)925일부터 1031일까지, 그리고 유키구미(雪組)111일부터 1130일까지 대극장 공연을 이어갔다.

 

각 공연조가 대극장 공연을 담당하지 않았을 때에는 다른 지역 공연에 출연했다. 유키구미(雪組)94일부터 30일까지 도쿄 공연, 호시구미(星組)913일 오사카 공연에 참가했다. 또 호시구미(星組)103일부터 31일까지 도쿄에서 공연했고, 하나구미(花組)111일부터 26일까지 도쿄 다카라즈카극장에서 공연했다. 호시구미(星組)113일 나고야 다카라즈카극장의 낙성식에서 공연했고, 츠키구미(月組)1129일부터 도쿄 공연을 시작했다.

 

 

, 9-11월의 3개월 동안 다카라즈카소녀가극단의 4개조가 대극장 공연과 타지역 공연을 전담했고, 이 기간에 외부 공연단체가 대극장 공연을 진행한 것은 119일의 최승희 공연이 유일했다. 이 공연일지에 나타난 다른 특이한 대극장 행사는 일본 황족의 공연 관람(1013일과 1116)<산악영화의 밤>이라는 영화 상영(1122) 뿐이었다.

 

이 시기의 전후로 범위를 더 넓혀서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에 초청된 다른 예술인이 있는지 조사했는데, 스도 고로(須藤五郞, 1897-1988)라는 음악가가 있었다. 그는 1935810일 오후6시반, 다카라즈카 대극장에서 <도구(渡歐)송별연주회>를 개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81일부터 31일까지는 소녀가극단의 호시구미(星組)가 대극장 공연을 담당한 기간이었는데, 그중 하루 시간을 내어 유럽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된 스도 고로의 송별음악회가 열린 것이다. 이는 11월에 최승희가 초청된 무용공연만큼이나 대극장으로서는 예외적인 행사로 보였기 때문에, 스도 고로가 어떤 경력을 가진 음악가인지 조사했다.

 

그는 미에(三重)현 도바(鳥羽)시 출신으로 구제도쿄음악학교(旧制東京音楽学校=도쿄예술대학음악학부의 전신)를 졸업한 후 동양음악학교(東洋音楽学校, 현재의 도쿄 음악대학)에서 가르치던 중, 1924년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의 고바야시 이치조 회장에 의해 다카라즈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겸 작곡가로 스카웃됐다.

 

 

19358월 유럽 유학을 떠나기까지 스도 고로는 적어도 13년 동안 다카라즈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으므로, 그가 자신이 늘 연주를 지휘하던 다카라즈카 대극장에서 송별 음악회를 열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의 내부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다카라즈카소녀가극단의 외부 예술인이었던 최승희가 대극장에서 무용 공연을 가졌던 것은 유일한 예외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진행됐을까?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石井漠, 1886-1962)191610월부터 1917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의 무용 강사로 일했던 사실이 상기됐다. 혹시 최승희의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은 스승 이시이 바쿠의 조언이나 소개로 성사되었던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문헌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의 공식 기록에는 이시이 바쿠가 소녀가극단의 무용 강사로 근무했다는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따라서 최승희의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jc, 202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