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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2025길-홍범도

[유준2025홍범도] 20. 범도의 태극기

유준 화백의 2025<홍범도>전의 작품들 중에는 태극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대개는 각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명시적으로 태극기가 묘사된 작품도 있습니다.

 

 

우리는 의병이며 대한독립군이다라고 설명된 <홍범도14(2024)>는 앞서 홍범도 장군의 국내 의병투쟁 시기를 묘사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1907년부터 1908년까지의 강원도 북부와 평안도 동부, 그리고 함경도 서부에서 활발하게 의병투쟁을 벌이던 모습입니다.

 

홍범도와 차도선의 두 명으로 시작된 의병부대는 19071014일 북청 일진회 사무실을 습격한 후 14명이 되었고, 112일 안산과 안평 지역 포수계를 흡수하면서 70, 19084월경에는 5백명으로 크게 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홍범도14>1907년 말의 홍범도 의병이 70명 수준에 도달했을 때의 전투준비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도 태극기가 사용되었는지가 궁금해서 조사해봤습니다. 조선에는 현대적 의미의 국기가 없었으나 왕을 상징하는 깃발로 태극팔괘도가 있었습니다. 조미통상조약(1882522)을 앞두고 고종이 김홍집을 시켜 조약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를 제작하도록 했고, 김홍집은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해서 태극기를 그리도록 했는데, 이 역시 중앙에 태극무늬, 그 주변에 팔괘를 그린 것이어서, 조선왕의 어기와 유사했지요.

 

조선 팔도를 상징하기 위해 팔괘를 사용했지만, 이는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박영효가 188289일 메이지호 선상에서 국기를 제작하면서 4괘로 조정됩니다. 이 태극사괘도는 188336일 정식으로 조선의 국기로 채택, 반포되었고, 1897년 조선을 이어 건국된 대한제국에서도 이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했습니다.

 

 

대한제국은 흔히 한국(韓國)으로 줄여 불리곤 했는데, 이때부터 한국의 국기는 태극기이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유준 화백이 <홍범도14>에 묘사한 1907-8년의 의병들도 당연히 태극기를 사용했습니다.

 

1910일제의 한국 강점으로 태극기 사용은 전면 금지됐지만, 한국인들에 1919년에 거행한 삼일만세운동에 대대적으로 사용했던 것이 바로 이 태극기이고, 삼일만세운동의 영향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이 태극기를 국기로 채택했습니다. 이후 계속된 항일 투쟁에서도 태극기가 독립운동의 상징이 된 것이지요.

 

 

1920년의 봉오동(6)-청산리(10) 전투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홍범도22(2024)>에도 배경에 태극기가 보입니다. 이때는 삼일운동 직후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족했고, 무장독립투쟁이 들불 번지듯 퍼져가던 시기이므로 태극기가 활발하게 사용되던 시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유준 화백의 <홍범도24(2024)>에도 태극기가 등장합니다.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보는 홍범도 장군의 뒤에 그의 애마가 서 있는데, 옆구리에 태극기가 날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기는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의 패전에 대한 일제의 보복으로 발생한 간도 참변(192010-19214) 직후, 대한독립군이 만주에서 물러나 연해주 등지로 망명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시기라고 짐작됩니다.

 

홍범도 장군은 만주를 떠나기 전에 백두산에 올라 한반도에 작별을 고하는 것처럼 읽힙니다. 굳이 이 장면에 태극기를 등장시킨 것은 홍범도 장군이 조국 산하를 떠나더라도 대한민국을 잊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범도의 귀환>이라는 제목이 붙은 <홍범도5(2024)>는 홍장군의 유해가 송환되는 장면입니다. 카자흐스탄 군의장대가 키질로르다의 코르키트 아타 국제공항까지 홍장군의 유해를 운송했고, 대한민국 국군 의장대가 이를 이어받아 유해 송환 특별기에 탑승하는 모습이죠.

 

이때도 태극기가 배경에 날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때의 태극기는 유준 화백의 <홍범도>전 태극기 작품 중에서 한반도 전체를 가리키지 않는 유일한 태극기입니다. 북한은 19489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하면서 그때까지 사용되던 태극기를 폐지하면서 인공기라고도 불리는 남홍색공화국기를 국기로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홍범도5>의 태극기는 대한민국만을 가리키는 깃발입니다. 독립전쟁의 전과정을 통해 태극기 아래서 일제와 투쟁했던 홍범도 장군의 입장에서는 태극기가 여전히 국기인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jc, 2025/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