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 화백의 수묵 산수에는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죠. 다만 자연 속의 등장인물들이 아주 작게 묘사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장쾌한 폭포나 망망한 바다, 혹은 거대한 산과 함께 묘사된 인물들은 대개 새끼손가락이나 성냥개비 크기입니다. 전통적인 산수화 기법을 충분히 되살렸으면서도 인물이 거의 없는 조선시대의 산수화와는 대비됩니다.
유준 화백의 2025년 <길>전에는 2024년의 <묵의 사유>전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산이 꽤 등장합니다. <꿈(2025)>에 묘사된 산은 “아마다블람(Ama Dablam)”입니다. 저는 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물었더니, 유준 작가가 알려주시더군요.
세르파 말로 “어머니의 목걸이” 혹은 “어머니의 펜던트”라는 뜻이라는 아마다블람은 높이가 6,812미터이므로 백두산(2,744미터)보다 2배이상, 한라산(1,947미터)이나 천왕봉(1,915미터)보다 3배이상 높지만,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들 중에서는 높이 순위가 100위에도 들지 못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미터)를 포함해 8천미터가 넘는 주봉(主峰)이 14개나 되죠. 안나푸르나의 위성봉을 합치면 히말라야의 8천미터 이상 봉우리는 16개나 됩니다. “큰 바위 꼭대기”라는 뜻의 루프가르 사르(Lupghar Sar)는 높이가 7,200미터인데, 히말라야 산맥에서는 높이 순위가 108번째입니다.
그래서 아마다블람이 유명한 것은 높이나 장대함 때문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모습 때문입니다. 이쁘다고 소문난 알프스의 마터호른(Matterhorn)의 히말라야 버전이라고 불릴 정도죠. 마터호른은 영화사 파라마운트의 로고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아마다블람보다 이름이 더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높이는 4천500미터가 살짝 안 되기 때문에 아마다블람이 훨씬 더 높습니다.
그런데 유준 작가의 <꿈>에는 아마 다블람을 배경으로 작은 텐트가 보입니다. 어두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텐트 안에는 불이 켜져 있는데, 그 불빛이 얼마나 도두라지게 아름다워 보이는지 모릅니다. (고산 등반자들의 텐트가 유독 노란 색이 많은데, 그건 유사시에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겠죠? 특히 야간에 불이켜지면 멀리서도 가장 잘 보이는 색깔이겠습니다.)
아마도 이 텐트는 등반을 위한 베이스캠프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다블람을 혼자서 등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죠. 아마도 정상 등반까지는 아니지만 장엄한 아마 다블람을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어쩌면 그게 이 야영자의 <꿈>일 수도 있겠군요.
은하수 모임 초기에는 박한용 선생과 유준 선생이 전국에 야영을 무척 다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도 2022년 1월 박한용 선생과 난생 처음 북한산 야영을 했었는데, 그 때 ‘아, 이래서들 산에 와서 텐트치고 자는구나’하고 느꼈더랬습니다. 밤늦게 주고받는 소주잔도 정겹고 불어터진 라면도 맛있기만 하더군요. 게다가 자연이 불러서 텐트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불켜진 텐트가 어둠 속에서 그렇게 이쁘더라고요. 그 때는 노란 색은 아니었고 녹색 텐트이기는 했습니다만...
오래 전에 가족과 함께 그랜드캐년에 구경을 갔었습니다. 아마다블람과는 종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랜드캐년도 거대하므로 압도되었더랬습니다. 미국에서는 나이아가라 폭포,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함께 3대 경관으로 치는 곳이기는 하죠.
숙소를 잡았던 곳이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입구였는데, 거기에는 아이맥스 영화관도 하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거기서 그랜드캐년 다큐멘터리를 관람했는데, 맨 마지막 나레이션이 이랬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인간은 생존과 영감을 위해 자연이 필요하다.”
아마도 유준 화백의 <꿈(2025)>의 쬐끄만 텐트의 야영자도 "영감"을 위해서 아마다블람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jc, 20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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