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11월 최승희가 파나마에서 뉴욕으로 돌아가는 길에 쿠바에 들렀다는 기록은 있으나, 이 쿠바 방문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없다. <삼천리(1940년 5월호)>에 실린 최승희의 기고문에서 “쿠바에서 룸바를 관람했다”는 서술이 전부다.
최승희는 이때 왜 쿠바를 방문했을까? 영화 <대부2편(The Godfather Part II, 1974)>에도 묘사되었듯이 혁명 전의 쿠바는 부유한 미국인들의 관광지였다. 그러나 최승희 일행이 관광 목적으로 쿠바에 들렀을 것 같지는 않았다. 최승희와 안막은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유럽에서도 관광목적으로 여행하거나 명사들과의 사교모임에 참석한 적이 없다. 첫째, 관광이나 사교에 쓸 돈과 시간이 없었고, 둘째, 공연 이외에 다른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1939년 11월, 최승희가 파나마에서 뉴욕으로 항해하던 중에 쿠바에 들렀던 것은, 무언가 ‘공연과 관련된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었을까? 나는 이때 안막과 최승희가 남미 순회공연을 위한 흥행사를 만났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흥행사란 영화의 제작자(producer)와 같다. 자금을 마련하고, 스케줄을 조정하고, 영화를 배급하는 일이 제작자의 일이다. 그래야 감독과 배우들이 영화 촬영에 집중할 수 있다. 음악과 무용 공연의 흥행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공연자를 발굴하고, 극장을 섭외하고, 공연을 홍보하고, 공연의 진행을 감독한다. 그래야 공연자들이 발표의 장을 얻을 수 있고, 공연 실무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공연 준비에 집중할 수 있다.
유럽 공연에서 최승희의 흥행사는 국제예술기구(Organisation Artistique Internationale)였다. 그리고 각국에는 흥행사와 계약을 맺은 대행사가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발말레트 콘서트 뷰로(Bureau de Concerts de Valmalete), 네덜란드에서는 휴고 헬름(Hugo Helm)과 에곤 카르터(Egon Karter)가 대행을 맡았다.
최승희의 미국 순회공연 흥행사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컬 뷰로(Metropolitan Musical Bureau)였다. 그리고 미국에도 공연자와 흥행사를 연결하는 대행자가 있었다. 솔 휴록(Solomon Israilevich Hurok, 1888-1974)과 퍼킨스(Perkins)가 그들이었다. 미국공연을 준비하면서 최승희는 휴록과 교섭하다가 실패하고 퍼킨스의 도움으로 메트로폴리탄과 계약을 맺었다.
한편 중남미 순회공연의 팜플렛을 보면 흥행사가 콘시에르토스 다니엘(Conciertos Daniel)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승희는 유럽과 미국의 흥행사를 만나게 된 사연은 자세히 설명했지만, 콘시에르토스 다니엘을 어떻게 만났는지 서술한 바 없다. 나는 최승희가 쿠바에 들른 것이 이 흥행사와 접촉하기 위해서라고 짐작했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단서가 있었다.
첫째는 콘시에르토스 다니엘의 창업자 에르네스토 데케사다(Ernesto de Quesada, 1866-1972)가 쿠바 태생이다. 그는 쿠바 만사니요(Manzanillo)에서 태어나, 미국 하바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공부를 마친 후 독일로 이주한 데케사다는 베를린에서 흥행사 콘체르트디렉치온 다니엘(Konzertdirektion H. Daniel, 1908)을 창업했다.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콘체르트디렉치온 다니엘은 스페인으로 옮겨 콘시에르토스 다니엘(Conciertos Daniel, 1914)이 되었다. 이 시기에 콘시에르토스 다니엘은 기타리스트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és Segovia, 1893-1987)와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 1887-1982)의 유럽과 남미공연을 주선했다.
둘째, 1940년 11월 최승희가 파나마에 머물다가 뉴욕으로 향할 무렵, 루빈스타인이 카리브해 순회공연 중이었다. 루빈스타인의 흥행사는 콘시에르토스 다니엘이었고, 그의 하바나 공연은 11월28일과 30일의 두 차례였다.
이 시기에 맞춰 최승희가 쿠바를 방문했다. 루빈스타인의 피아노 콘서트를 전후로 하바나를 방문한 최승희는 흥행사 콘시에르토스 다니엘의 관계자를 만나, 그의 남미순회공연 계약을 맺었거나, 적어도 기획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jc, 202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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