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극장의 설립자 채중현을 조사하던 중, 그가 음악가 채동선(蔡東鮮, 1901-1953)의 부친임이 밝혀졌다. 1922년 11월4일의 <동아일보(3면)>의 기사가 이를 확인해 주었다.
기사에 따르면, 보성경찰서 벌교주재소에 근무했던 전직 순사 정종석(鄭宗錫, 당시24세)이 “지난달(=10월) 27일 오전9시경에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 채중현의 장남 채동선(蔡東鮮)의 이름으로 채중현에게 (아들의) 병이 위중하니 돈 30원만 보내라는 위조전보를 떼어 30원을 사기하여 먹은 것이 발각”되었다는 보도였다.
정종석은 벌교 근무 당시 혐의자를 무차별 폭행하고, 여성을 발가벗겨 욕보이고, 노인을 사망케 한 악질 순사였을 뿐 아니라, 해임된 이후에도 “밥줄이 끊어져서 사면으로 부랑하야 돌아다”니면서 동족을 사기 치던 반민족적 저질 인생이었지만, 그의 범죄행위 덕분에 채중현과 채동선의 부자관계가 당시의 문헌으로 확인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다.
채중현이 1930년에 <벌교극장>을 설립했을 때 채동선은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1년만이었다. 채중현은 아들이 고향에서 연주회를 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부친의 재력과 함께 자신의 영민함과 예술적 재능을 바탕으로, 채동선은 1915년 순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성으로 유학, 경성제1고등보통학교(=경기고등학교)에 입학, 3학년이던 1918년 홍난파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4학년이었던 1919년 만세운동에 가담해 투옥되었지만 벌교 대지주인 아버지의 재력으로 출옥, 경성제1고보를 중퇴하고 일본유학길에 올랐다.
1920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음악대신 영문학을 전공했다. 1924년 와세다대 졸업 후 야마다 코사쿠(山田耕莋, 1886-1965)가 지휘하는 일본교향악단에 입단, 일본 각지를 순회하는 연주여행에 참여했다. 이후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할 계획으로 잠시 미국생활을 했으나, 바이올린 전공으로 마음을 정하고 독일 베를린의 슈테른 음악학교에 입학,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했다. 독일 유학 당시 채동선은 리하르트 하르체(Richard Harchet)에게서 바이얼린, 빌헬름 클라테(Wilhelm Klatte)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1929년 9월 독일에서 귀국한 채동선은 이화여자전문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1939년까지 4회에 걸친 개인 독주회와 다수의 작품발표회를 가졌고, 1932년에는 작곡 발표회, 1937년에는 가곡집을 출판, 1939년에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창작곡발표 대음악제에서 <바이얼린 환상곡 라단조>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음악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또 당시 조선의 양음악가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민요 채집과 편곡에 열정을 보여, 한국 전통음악 발굴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가 만주침략(1931년)에 이어 중국침략(1937년)을 감행하면서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되자, 조선 음악가들이 대거 내선일치와 황국신민화에 동원되었는데, 채동선은 일제부역을 거부하기 위해 음악활동을 일체 중단하고, 수유리에 2만여평의 땅을 매입해 고등채소와 관상묘목을 재배하는 데에 몰두했다.
채동선의 반일 행동은 다른 조선인 음악가들과 대립을 일으켰다. 홍난파와 안익태를 비롯한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친일 행각에 앞장서고 있었으나 채동선은 친일부역에 동참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채동선은 친일 음악행위뿐 아니라 창씨개명과 조선어금지 정책에도 저항했다.
경성 시절 채동선이 거주하던 성북동 가옥의 문패는 유명한 일화이다. 당시 모든 가옥은 일본식 문패를 달도록 강요되었는데, 채동선은 문패의 집 주소를 “183의17”이라고 명시해, “의”라는 단 한 글자나마 조선어를 표기했던 것이다.
해방 후에도 수난은 계속됐다. 미군정 치하에서 친일부역 음악가들이 득세하면서 채동선의 민족음악 활동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여고에서 음악교사, 서울대 상과대학과 숙명여대에서 독일어 교수로 재직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해 막노동과 담배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중, 1953년 2월2일 급성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jc, 202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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