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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1934공연

[도쿄1934공연] 4. 이시이 에이코

최승희가 1934년 가을 데뷔공연을 결심한 것은 당시 일본무용계의 분위기가 활발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계기는 이시이무용단의 동료 이시이 에이코의 발표회였다. 이에 대해 최승희는 <나의 자서전(1936:127)>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이시이 선생의 문하생이며, 선생의 여동생인, 지금은 돌아가신 이시이 에이코 씨가 제1회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호평이었고 에이코씨는 안무의 재능을 일반에게 높게 인정받았습니다. 이 발표회는 지금까지 침체되어 있던 무용계의 분위기를 깨뜨렸고, 신인 무용가가 속속 배출되고 있다는 신선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가난과 싸우면서도 자신의 예술 창작에 대해서는 나날이 불타는 야심과 열정에 달아올라 있었던 내가 이러한 분위기에 어떻게 둔감할 수 있었겠습니까?”

 

 

최승희는 곧바로 남편 안막과 상의한 후 스승 이시이 바쿠의 허락을 얻어 발표회를 추진했는데, 그가 이시이 에이코의 발표회에 자극을 받았던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최승희와 에이코는 나이도 비슷했고 무용 입문 시기도 비슷했다. 1911년생인 에이코는 이시이 바쿠가 해외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19254월초 이시이 바쿠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했고, 1912년생인 최승희는 친오빠 최승일의 권유로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보고 19263월말에 무용에 입문했다.

 

 

최승희와 에이코가 처음 만난 것은 1926년 이시이 바쿠의 경성공연 3일째(323)였는데, 이 공연에서 에이코는 아동무용(童踊) <완바쿠코조(わんぱく小僧)>를 상연했다. 그날 밤 최승희가 무용입문을 결심한 것은 이시이 바쿠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지만, 그와 함께 자신과 같은 나이의 에이코가 공연에 참여하고 있었던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최승희의 도쿄 무용유학(1926.4.-1929.8.) 기간 에이코와 최승희는 단짝이었다. 1926615일자 <도쿄니치니치신문(10)>은 두 사람이 이시이 코나미(石井小浪), 이시이 요시코(石井欣子)와 함께 의자매를 맺었다고 보도했다. 이중 최승희와 에이코와 요시코는 이시이 바쿠의 3인무 <그로테스크>의 단골 출연 멤버였다.

 

 

최승희가 경성시절(1929.8.-1933.3)을 청산하고 도쿄로 돌아갔을 때 에이코는 가장 반겨준 사람이었고, 최승희의 2살난 딸 승자를 위해 기저귀감을 마련해 줄만큼 마음이 따뜻했다.

 

에이코는 이시이 바쿠의 허락아래 1933924일 일본청년관에서 제1회 작품발표회를 가졌는데, 최승희는 우정 출연으로 에이코의 발표회를 도왔고, 이후에도 교류와 협력을 이어갔다.

 

 

개인 공연을 갖는다는 것은 곧 스승의 문하에서 독립한다는 뜻이지만, 에이코는 발표회 이후에도 이시이 무용단과 협력하면서 오빠를 지원했는데, 이에 대해 이시이 바쿠는 자전적 에세이집 <나의 얼굴(1940)>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에이코는 여동생이지만 나이가 너무 어린 탓에 내 아이와 같은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학문에 종사시키려고 한 것을 내가 무리하게 무용가로 만들었다. 에이코가 독립한 후에도, 일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나의 상담 상대가 되어 주었다. 이번에도 에이코와 상담한 후에 나의 연구소를 나고야와 고베에 증설할 예정이었다.”

 

 

이시이 에이코는 발표회를 통해 안무 실력을 인정받은 무용가였을 뿐 아니라, 24세의 나이에 25년 터울의 오빠 이시이 바쿠의 의논 상대가 될 만큼 사려가 깊었고, 의자매 최승희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아끼지 않을 만큼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이었다.

 

 

최승희가 에이코의 발표회를 보고 자신의 발표회를 결심한 것은 경쟁심 때문이 아니었다. 의자매이자 무용선배인 에이코의 선례를 따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이코는 탁월한 무용가였을 뿐 아니라 최승희의 성공을 가장 크게 응원해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시이 에이코는 1936810일 급성맹장염으로 사망했다. 이시이 바쿠는 여동생 에이코의 묘를 쿠혼부츠(九品佛)에 마련했는데, 오늘날의 지유가오카(自由), 자유의 언덕이다. (jc, 2024/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