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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寶塚)에 묻힌 다섯 명의 조선인 노동자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2019년 11월초 오사카에서였다. 효고현 이타미(伊丹) 시에 거주하시는 재일동포 사진가 정세화 선생으로부터였다. 1910년대와 20년대에 있었던 이 지역 토목공사 중에 사고로 사망한 조선인들을 추도하는 비석이 세워진다는 말씀을 처음 들은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내가 추도비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재일 조선인 위령비나 추도비에 대한 선지식도 별로 없었을 때였고, 무엇보다 당시 나는 무용가 최승희 선생에게 푹 빠져서 그가 1930년대 일본 각지에서 가졌던 조선무용 공연을 조사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그보다 2년쯤 전인 2017년 5월 나는 최승희 선생의 유럽 공연을 조사해 취재기를 쓴 바 있었고, 연재가 끝나자 바로 일본 공연 조사를 시작했었다. 그뒤로 1년 반 동안 나는 홋카이도의 구시로에서 오키나와의 나하에 이르기까지 최승희 선생의 공연이 있었던 곳이면 어디든 쫓아갔다. 정세화 선생을 만났던 2019년 말에는 이미 일본 내 42개 도시를 조사한 뒤였다.
각 지역 조사에서는 공연 날짜와 극장을 확인하고, 발표된 작품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정리했다. 신문이나 잡지에 난 공연 광고나 홍보 기사, 그리고 평론가들의 비평과 기자들의 후기, 혹은 일반인들의 감상문도 빠짐없이 스크랩했다.
조사 초기에는 무용 작품에 대한 관심보다는 최승희라는 인물에게 더 끌려 있었다.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어떻게 조선무용을 창작하고 공연할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그 시기에 국제무대에서 그다지 활발하게 공연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 또 어떻게 가는 곳마다 환영받고, 감탄을 자아내고, 최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그런 것이 궁금했다.
자료가 쌓이고 유럽과 일본의 평론가들의 비평을 정리하면서 최승희 조선무용의 미학에도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평론가들의 비평과 최승희 자신의 작품 묘사를 읽으면서 최승희가 공연했던 조선무용의 특징적인 동작과 정조가 어떤 것이었는지 조금씩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조선무용에 대한 또 한 번의 전기를 맞았다. 2019년 10월31일부터 11월2일까지 오사카에서 재일 조선학교 중앙예술경연대회를 참관하게 된 것이다.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열렸던 이 경연대회에서 나는 오사카조고 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무용경연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참관했다. 내가 재일 조선학생들의 조선무용을 직접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각국 비평가들의 평론과 최승희 자신의 단편적인 작품 설명을 통해 불완전하게나마 머릿속에 그려지던 조선무용의 실체가 눈앞에서 완벽한 형태로 펼쳐지고 있었다. 학생들의 작품이 주는 느낌과 감동은 내가 상상으로 구축해오던 바로 그 무용이었던 것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내가 최승희 조선무용에 대한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직관은 재일조선학교 무용부 학생들이야말로 최승희 선생의 직계 제자들이라고 말해 주었다.
오사카 예술경연대회에서 만난 또 하나의 행운은 정세화 선생을 만난 것이었다. 그는 이 경연대회의 사진 및 영상 촬영책임자로 각 학생들의 공연 작품들을 일일이 사진과 영상에 담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학생들에게 기념품으로 전달되고 각 학교에 기록으로 보관된다고 했다.
경연대회 첫날 점심 겸 휴식 시간에 대회장 바깥으로 나와 흥분을 가라앉히다가 정세화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붙임성 좋은 정세화 선생께서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한국에서 오셨지요?” 그리고는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그 뒤로 정세화 선생은 내 최승희 조사연구를 적극 도와주셨고, 재일조선학교 무용부 학생들에게 무용신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인도해 주셨다. 효고현의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와 함께 이 지역 조선인 정착의 아픈 역사를 소개해 주셨고, 마침내 우리는 추도비의 주인공 다섯 분의 한국내 연고를 찾는 일에 함께 나서게 되었다. (jc, 20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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