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는 1939년 2월27일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전날인 2월26일 칸에서 공연을 가졌고, 다음날 오전에 칸을 출발해 오후에 마르세유에 도착, 저녁에는 일본 영사관이 주최한 최승희 환영 리셉션에 참석했고, 3월1일 시립 오페라 극장에서 조선무용 공연을 가졌다.
칸 공연의 일정은 이례적이었다. 파리 주재 일본 대사관이 개최한 간담회 때문이었다. 일본 대사관은 2월24일 오후 파리 오페라 하우스 옆의 카페 드라페(Café de la Paix)에서 간담회를 개최했고, 최승희는 이 간담회의 2부 순서에 출연했다.
간담회 또는 토론회라고 불렸던 이 모임은 명목적으로는 파리 주재 일본인 기자단이 주최한 것으로 발표됐는데, 사실상 일본대사관이 주도한 행사였다. 일본 대사관에 근무하던 해군무관 스미카와 마사오(澄川正男) 대좌(=대령)가 “일본의 해군정책”을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하이난섬(海南島) 문제, 일소(日蘇)어업문제, 괌도 방어문제, 중국연안 봉쇄문제 등 광범위한 시국문제가 설명됐고, 참석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고 보도됐다. 즉, 이 간담회는 일본 대사관이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진행하던 침략행위를 해명하는 행사였다.
이 간담회의 2부 순서에 최승희가 참가했다. “나중에 참가”했다는 보도로 미루어, 안막과 최승희는 1부의 해군정책 간담회에는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 2부 순서에서는 “조선무용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고 보도됐는데, 아마도 조선무용 수 개 작품이 시연되었을 것이다.
이 행사의 “참가자는 약 70명으로 매우 성황”을 이뤘다고 보도됐는데, 당시 파리 주재 일본인 기자가 70명이나 되었을 리 없으므로, 참석자는 대부분 파리 주재 언론인과 외교관들이었을 것이다. 즉 일본 대사관은 정상급 예술가로 급부상한 최승희의 인기를 이용해 관객을 모은 후, 일제의 해군정책을 홍보했던 것이다.
최승희는 일본 공관에 이용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초청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살플레옐 공연(1/31)을 앞두고 대사관이 리셉션을 열어주었던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지만, 언제라도 여권을 취소해 순회공연을 중단시킬 수 있는 대사관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2월26일의 칸 공연을 앞두고 최승희가 간담회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신문 기사는 간담회가 24일 ‘저녁’에 열렸다고만 했을 뿐 시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행사가 7시까지 종료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랬다면 최승희가 7시50분 파리를 출발하는 <칼레-지중해 특급>, 즉 <르트랑 블루>에 승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파리 리용역까지는 약 5킬로미터 거리이므로 당시에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간담회가 열린 카페 드라페는 가르니에 오페라(Opéra Garnier) 인근에 위치한 그랑 호텔(Le Grand-Hôtel)의 연회장이었고, 간담회는 저녁식사를 겸한 행사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5시 이후에 시작되어 2부 순서는 밤까지 계속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최승희는 그날 저녁 <르 트랑 불루>에 승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승희 일행은 결국 다음날인 25일 저녁에 파리를 출발, 칸에는 공연 당일인 2월26일 아침 7시48분에 도착했을 것이다. 조명과 음향 등의 무대장치를 준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고, 리허설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 대사관의 간담회를 이유로 공연 일정을 조정하기도 어려웠다. 마르세유와 칸의 현지 신문들이 2월22일부터 공연 홍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칸 공연 이후의 마르세유 공연 일정은 정상을 되찾았고 비교적 여유 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 27일 아침에 칸을 출발해 당일 오후에 마르세유에 도착, 일본영사관이 주최한 환영 리셉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공연은 이틀 뒤인 3월1일이었기 때문에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칸에서 마르세유까지는 특급열차로도 3시간이 걸렸는데, <르트랑 블루>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 기차의 칸 출발이 오후 6시11분이어서 마르세유 리셉션 시간에 맞출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아마도 다른 급행, 혹은 일반 열차를 이용했을 것이다. (jc, 202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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