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시작됐습니다. 아침에 안산 자락길을 걸었습니다. 7킬로미터가 조금 넘기 때문에 하루에 1만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작년에는 자락길 덕분에 연평균 하루1만걸음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저한테는 고마운 길이지요.
오늘도 평상시처럼 7시가 조금 넘어 날이 밝기 시작하자 자락길에 올랐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습니다. 새해 첫날 첫 해돋이를 보려고 올라온 사람들입니다. 지극 정성 아닙니까? 대한민국에 태양숭배자가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어쩐지 어제 자락길을 걷다보니까 난간에 손전등을 뜨문뜨문 걸어놓았더군요.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오늘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안산에 올라오는 분들을 위해서 전등을 미리 달아놓은 것이었더군요. 자락길에는 극히 일부 구간을 빼면 가로등이 따로 없기 때문이겠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많아서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으려나, 의아했는데, 7시40분쯤 해가 올라왔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구름은 중천에만 떠 있었고, 동남쪽 하늘은 맑았습니다. 그래서 시뻘건 해가 쑤우우욱 밀려 올라오는 것이 생생하게 보이더군요.
곳곳에 모여선 사람들이 일제히 환성을 올리면서 휴대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여기저기 포스팅을 합니다. 새해 첫날을 일출과 함께 시작하는 것은 꽤 뜻 깊은 일입니다. 그 시간에 숙취에 시달리면서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것 보다는 당연히 그렇습니다.
저는 뜨는 해보다 뜨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더 감동을 느꼈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단체로 온 그룹도 있고, 나란히 서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커플도 많더군요. 저는 이미 받은 복이 충분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행운을 빌어주었습니다. 당신들의 소원이 이뤄지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해가 뜨는 걸 오른 옆으로 바라보면서 저는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아직 5킬로미터 이상 더 걸어야 했기 때문이죠. 걷다가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아침에 본 2024년의 첫 일출은 지구의 다른 곳에서는 2023년의 마지막 일몰일 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두툼한 파카를 입고 모자와 장갑을 챙겨서 산에 올라왔지만, 적도와 날짜변경선 건너편에서는 반바지나 비키니에 슬리퍼 신고, 비치 의자에 앉아서 한 손에 맥주, 다른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바다 너머로 지는 2023년의 마지막 일몰을 즐기고 있을 겁니다.
이쪽의 일출 감상자들은 해가 뜨고 나면 산을 내려가 소주 반병과 콩나물국밥으로 아침 식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편의 일몰 감상자들은 해가 지고나면 식탁에 둘러앉아 포도주와 닭고기 스튜로 저녁식사를 하거나, 아니면 바로 침대로 뛰어들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자락길의 나머지를 걸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다가 아니다. 숱한 다른 사람들은 각각 다르게 보고 듣고 느끼고 있을 테고, 그러는 게 정상일 것이다.
물론 그동안도 그런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지요. 상대성이라는 개념이 그런 것이니까요. 남들이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 그들이 내가 느끼는 것을 느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상대방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상한 넘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것을 알고 있더라도 막상 이런저런 상황에 부딪히면 깜빡깜빡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절연하거나 쌈박질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작년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마음에서 떠나보냈습니다.
그래서 오늘 자락길에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은 주위에 없을 것이므로, 내 입은 처닫고, 남의 말을 잘 듣기로 하자. 그래야 국밥 한 그릇이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 참, 상대성이 중요하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새해 소원이 있습니다. 제발 탄핵 좀 해 주세요. 나라 망하겠어요. (jc, 20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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