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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이야기

[마르세유1939공연] 8. 르트랑 블루

최승희는 19381224일 르아브르를 경유해서 파리에 도착했고, 1939131일 파리 살플례옐 공연, 26일 브뤼셀 팔레드 보자르 공연을 마치고, 2월 말 칸과 마르세유로 향했다.

 

당시는 비행기가 상업화되기 이전이므로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기차를 타야 했다. 이때 최승희와 안막은 파리에서 <르트랑 블루(Le Train Bleu)>에 탑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어로는 <블루 트레인>으로 번역되었던 <르트랑 블루>는 프랑스 서북부의 칼레(Calais)에서 동남부의 코트 다쥐르(Côte d'Azu)를 대각선으로 연결하는 특급열차 노선이었다.

 

<오리엔트 특급열차(1883-2009)>가 프랑스 칼레에서 시작해 파리, 스트라스부르, 뮌헨, 비엔나, 부다페스트, 부카레스트 등을 경유하면서 유럽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 이르는 급행열차였다면, <르트랑 블루(1886-2003)>는 칼레에서 파리, 리용, 마르세유, , 니스, 몬테카를로, 망통을 경유하면서 프랑스를 가로질러 이탈리아의 벤티미글리아(Ventimiglia)에 도착하는 특급열차였다.

 

 

유럽의 귀족과 명사들, 그리고 저명한 작가와 예술가들이 애용했던 이 두 열차는 벨기에 철도회사 <국제 침대차 및 유럽호화 급행열차 회사(Compagnie internationale des wagons-lits et des Grands Express Européen)>가 운영하던 노선으로, 운행 초기 <오리엔트 특급열차>2,740Km80시간동안 달렸고, <르트랑 블루>1,210Km28시간동안 주행했다.

 

이후 <르트랑 블루>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1930년에는 같은 거리를 20시간에 달렸고, 1937년에는 운행시간이 약 12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최승희가 여행했던 1939년 경 <르트랑 블루>의 속도는 약 시속 1Km에 이르렀다.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34)>과 같은 이름의 영화(1974, 2001, 2017) 덕분에 더 널리 알려졌지만, 아가사 크리스티는 그보다 6년 전에 <블루 트레인의 비밀(The Mystery of the Blue Train, 1928)>을 출판한 바 있었다. 두 추리소설의 주인공은 에르퀼 푸와르로 동일하다.

 

 

최승희가 마르세유 공연을 위해 파리를 출발하면서 <르트랑 블루>에 탑승했다는 문헌 기록은 발견된 바 없다. 하지만 당시 파리-마르세유간 직행열차가 드물었고, 최승희가 자주 고속열차를 이용했던 사례로 보아, <르트랑 블루>가 여행수단이었을 것으로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최승희는 조선과 만주순회공연을 위해 도쿄-시모노세키, 부산-경성, 경성-창춘/신징 등을 여행할 때에 급행열차 사쿠라(さくら)나 특급열차 히카리(ひかり)를 이용했고, 1936년 경부선에 쾌속열차 아카츠키(あかつき)가 도입되었을 때에도 이에 가장 먼저 탑승하기도 했다.

 

1940년 제2차 미국순회공연 때에도 최승희는 뉴욕-시카고 여행(2)을 위해 당시 가장 빠른 쾌속열차 <20세기 리미티트(20th Century Limited)>에 탑승했고, 미서해안 공연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갈 때(4)에도 쾌속열차 <서던 퍼시픽 챌린저(Southern Pacific Challenger)>를 이용한 바 있었다.

 

 

이같은 최승희의 여행습관에 비추어 파리-마르세유 여행에도 당대에 속도가 가장 빠른 호화열차 <르트랑 블루>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승희가 장거리 순회공연에서 고속열차를 선호한 데에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철도는 구간마다 서로 다른 회사가 운영했던 경우가 많아서, 주요 여행지마다 기차를 환승해야 했다.

 

 

그러나 순회공연을 위해서는 열차 환승이 대단히 불편한 일이었다. 최승희의 경우 한 번의 공연을 위해 필요한 무용의상과 악기, 소품 등이 여행용 가방 20여개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 가방들을 한 열차에서 다른 열차로 옮겨 싣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또 열차의 환승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을 경우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최승희는 늘 직행열차를 이용했고, 하루 이상이 소요되는 여행에는 침대차를 이용했다. 이는 최승희가 마르세유 공연을 위해 <르트랑 블루>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jc, 202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