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트레인(train), 프랑스어 트랑(Train), 스페인어 트렌(tren)은 모두 라틴어 트라헤레(trahere)에서 온 말이다. “끌다”는 뜻이다. 독일어 주크(zug)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유럽원어의 어근 두크(dewk-)에서 유래했다. 이 역시 ‘끌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차뿐 아니라 버스나 전차가 두 대 이상이 연결되어 있으면 모두 트레인이다.
트레인을 한자어로 번역해서 쓰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사정이 약간 복잡하다. 중국에서는 처음에 후아처(火车)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기차가 석탄을 때서 가던 시절에 번역했기 때문이겠다. 지금은 줄줄이 이어졌다는 뜻으로 리에처(列车)라고 부른다.
일본어에도 카샤(火車)라는 말은 있지만 잘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키샤(汽車)라는 말을 쓴다. 이 역시 석탄을 때서 만들어낸 증기(蒸氣)로 열차를 끌던 시절에 도입된 번역어이다. 요즘은 주로 레츠샤(列車)라고 한다. 증기기관의 시대가 반세기 이전에 끝났기 때문이겠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열차(列車)와 기차(汽車)라는 말이 둘 다 자주 쓰일 뿐 아니라, 용례에서는 아직도 기차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예컨대, 증기기관과는 아무 상관없는 무궁화호, 새마을호, ktx를 기차라고 불러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엄격히 말하자면 기차는 열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증기자동차도 기차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1769년 프랑스의 니콜라 퀴뇨가 증기자동차를 발명했지만, 1백년도 지나지 않은 1860년 프누아르(J.J. Lenoir)가 발명한 석탄가스를 이용한 내연기관을 발명하면서 증기자동차는 퇴출되기 시작했다. 이후 증기기관은 대용량의 탈 것, 즉 열차에만 주로 사용되었다.
1876년 가솔린엔진, 1892년 디젤엔진이 발명되었으나 초기 내연기관의 열효율이 낮았으므로 자동차를 움직이는 소형엔진으로 사용됐고, 열차에는 여전히 증기기관이 이용되었다.
예컨대 일본은 1868년 도쿄-요코하마 사이에 첫 철도를 개통했고, 1962년 디젤기관차를 도입했으니, 그 사이의 기관차는 모두 증기기관차였고, 이때의 열차는 모두 기차였다. 즉, 초기 1백년의 일본 열차는 모두 기차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에서는 열차나 전차라는 말이 주로 쓰이고, 기차라는 말도 쓰이기는 하지만, 이는 “열차가 기차였던 시절의 잔재”이며 특히 “전차까지 기차라고 호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히 정의해 놓았다.
사정은 한국도 비슷한데, 최초의 철도 경인선을 1899년에 개통했고, 해방 후 미국의 영향으로 일본보다 이른 1955년부터 디젤기관차를 도입했다. 따라서 1955년 이전의 모든 기관차는 증기기관차였고, 모든 열차는 기차였다. 그러나 1955년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열차를 기차라고 부르는 관행이 무시할 수 없이 많은 비율로 남아 있다.
1920년부터 1999년까지 발행된 한국의 5개신문(경향, 매경, 동아, 조선, 한겨레)에는 기차라는 말이 27,579회(31%), 열차라는 말이 60,205회(69%) 등장했다. 디젤기관차가 도입된 1955년 이후에도 기차가 16,744회(29%), 열차는 41,829회(71%) 사용되어, 큰 변화가 없었다. 즉, 증기기관차가 사라진 이후에도 기차라는 말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기차’라는 말은 서양의 트레인을 도입한 후에 만들어진 번역어로 정착되어 민간 어법에 끈질기게 남은 것이다. 일본에서 옛날 국철, 즉 오늘날의 JR철도의 열차를 여전히 ‘기차’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후에 가설된 사철은 ‘기차’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철이나 노면전차는 덴샤(電車)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JR철도는 증기기관 시절에 시작되었지만, 사철은 주로 전기 동력을 이용하던 시기에 가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기관차의 동력의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열차는 트레인이라고 부르면 그만이다. 정차역이 적고 속도가 빠른 열차는 익스프레스 트레인이라고 부르는 데, 이를 한국과 일본에서는 급행‘열차’라고 부르며, 이때는 급행‘기차’라는 말은 사용하지는 않는다. (jc,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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