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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32. 후쿠시마 (3) 여성성 공연(?)

후쿠시마 도서관에서는 자료도 많이 나왔고, 최승희 공연의 일시와 극장도 모두 확인되었습니다. 그 자료들을 찬찬히 살펴볼 시간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별은 해야 했습니다. 혹시 도서관을 떠나기 전에 당장 심층 조사가 필요한 사항이 없는지 알아 보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다급한 조사 항목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뭔가 다른 지역에서의 공연과는 다른 느낌을 자꾸 받게 됩니다. 그게 뭘까,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193672일의 후쿠시마 공연이 여성성이 강조되었던 것 같은 느낌이네요.

 

 

우선 최승희 무용단이 전원 여성 무용수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남성 무용수가 제외되었다는 점은 연목을 정리하면서 앞글에서 이미 지적했던 사항입니다.

 

1937622일의 <후쿠시마민유신문>의 최승희 공연 첫 기사에서 여성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제목을 뽑았습니다. 특정 내용을 제목으로 삼았다는 것은, 그것이 진짜 두드러진 현상이라는 뜻이겠지요?

 

게다가 625일의 <후쿠시마민유신문>은 최승희 공연의 전매(前賣, 즉 예매) 상황을 보도하면서 학생단체의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고, 그 예로 고녀생 250여사범 학생 150이 이미 단체로 공연을 예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고녀생이란 고등여학교, 즉 여자고등학교 학생을 가리키고, ‘여사범이란 여자사범학교, 즉 요즘으로 치면 교육대학과 사범대학교를 가리킵니다. , 젊은 여성들이 최승희 공연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예매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또 후쿠시마 시민들은 무용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최승희에게 꽃다발을 증정할 사람을 선발했는데, 두 사람이 모두 여성입니다. 한 사람은 후쿠시마 시의 미인이라고 소개된 시가 마사코(志賀雅子, 18)씨이고, 다른 한 사람은 후지마 간큐(藤間勘久)씨의 애제자 신도키와(新常盤)의 딸 다케와키 시즈코(竹脇靜子, 6)입니다. 시가 마사코양은 후쿠시마역 플랫홈에서, 다케와키 시즈코양은 극장의 무대에서 증정하기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최승희 무용단이 후쿠시마 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72일 오후042이라고 보도되었습니다. 아마도 오후1242분을 가리키는 말이겠지요. 지금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말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정오를 지나 오후1시가 되기 전에는 오후0시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만일 밤042분이었다면, 오전042분이라고 썼겠지요.

 

원래 최승희 일행은 오후257분에 도착하는 열차로 후쿠시마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공연 전에 사인회를 열어 달라는 열렬한 팬들의 요청으로, 최승희 무용단은 그보다 두 시간 정도 빨리 후쿠시마에 도착하기로 일정을 앞당겼다는 내용도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열혈 팬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최승희가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부 여성운동가들은 물론 심지어 연구자들도 최승희를 페미니스트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그래서 최승희가 보인 몇 가지 행동과 결정을 페미니스트의 증거로 제시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학자는 최승희 선생을 “20세기 최후의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면서 책 제목까지 그렇게 붙인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시도가 약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해 반박이 될 만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만일 진심으로 최승희 선생의 여성주의적 성향이나 그의 일본인 팬들 중에서 여성주의자들이 많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고 싶다면, 19377월의 후쿠시마 공연을 연구해 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암튼, 막 발견된 자료들을 제목 중심으로만 대략 일별한 것만으로도 이 후쿠시마 공연이 이례적이고, 신기하면서도, 중요한 공연이었을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됩니다. (jc, 2023/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