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출발은 늦었지만 나리타에는 얼추 시간에 맞게 내렸습니다. 예정보다 15분밖에 안 늦었으니까요. 다른 도착 비행기가 없었는지 입국/세관 심사도 신속해서 금방 공항을 나왔습니다. 다만 비행기 내려서 공항 밖으로 나올 때까지 많이 걷도록 동선을 만들었더군요. 덕분에 인천과 나리타의 두 공항에서만 1만보를 걸었습니다.^^
공항에서 할 일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JR패스를 사는 일과 환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도착한 날은 도쿄에 머물 예정이고, 신바시(新橋) 근처에 숙소도 예약해 놓았으므로, 이날은 JR패스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는 부지런히 돌아다녀야하므로 기차패스가 필요합니다.
일본에서도 카드나 온라인 결제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현금만 받는 곳이 꽤 많기 때문에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천 공항에서 난리법석을 치르는 바람에 환전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JR패스도 환전도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JR패스는 일본 전역의 일본철도(Japan Railways)를 탈 수 있는 패스입니다. 값은 비싼데, 나처럼 응축된 여정으로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요긴합니다. 지난 7월 취재 때도도 35만원 상당의 JR패스로 2백만원어치 기차를 탔으니까요. 이번에도 도쿄를 중심으로 아오모리에서 고베까지 왕복해야 하므로 JR패스가 꼭 필요합니다.
JR매표소를 찾았는데, 올해부터 JR패스는 온라인으로 구매해야 한다고 합니다. 구매 영수증을 가져오면 매표소에서 패스를 발행한다고 합니다. 음, 이건 뭐지? 온라인으로 팔았으면 휴대폰으로 가지고 다니게 하면 될 텐데, 왜 또 매표소를 방문해서 종이 승차권을 받아야 하는지... 지난 7월에도 매표소에서 바로 살 수 있었는데 그새 바뀌었나 봅니다.
지금쯤 한국인들은 대부분의 일을 온라인으로 하는 데에 익숙하지만, 온라인 관행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많이 귀찮았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수많은 회원가입 절차와 인증 과정, 쌓여가는 비밀번호들 때문이었지요.
지금은 크롬이 대신 외워주고 있어 불편이 없습니다. 그런 편의 때문에 구글이나 다음/네이버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 염려가 되지만, 어쩌겠습니까? 네이버 메일도 쓰고 티스토리 블로그도 하면서 크롬 브라우저를 쓰니까, 나도 삼중의 노예입니다.
일본은 지금 막 그런 시기를 시작하나 봅니다. 그래서 JR패스를 사려면 JR웹사이트에 가서 크레딧 카드로 사야합니다. 즉, 이제 신용카드 없으면 일본에서도 JR패스를 살 수 없는 거지요.
매표소 옆에서 랩탑 펴고 온라인으로 JR패스를 샀습니다. 입력할 난이 왜 이렇게 많고, 동의해야 하는 옵션이 왜 그리도 많은지, 생년월일에서 날짜를 먼저 써야하는지 연도를 먼저 써야 하는지, 네 자리씩 끊어져 있는 카드번호의 사이를 띄어야 하는지 말야야 하는지....
게다가 최종 압권은 한국 신용카드로 지불을 하려니까, 인증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국내용 인증절차가 안 먹히는 수가 있으니,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는 지시를 따라 다니느라고, 아이고... 현금 내거나 신용카드로 바로 지불하면 30초쯤 걸릴 일이 온라인으로 하느라고 30분 넘게 걸렸습니다. 그래도 사기는 샀으니 다행이기는 합니다.
환전은 못했습니다. 지갑에 한국 돈이 전혀 없더라고요. 인천공항에서 현금 인출해서 환전했어야 하는데,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북새통이어서 못한 거지요.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JR패스는 다음날부터 유효하기 때문에 공항을 빠져나가는 기차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JR열차의 차표발매기에서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만 요구합니다. 아이고, 공항에서 갇혀버린 겁니다. 빠르지만 비싼 사철 매표소로 가서 카드로 표를 사야 하는가, 하고 있는데, ...
지난 7월에 사용했던 아이코카(ICOCA) 카드가 생각납니다. (일본 분들은 ‘이코카’라고 부르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등가방 안주머니를 뒤지니까 카드가 나옵니다. 잔액 조회를 하니까, 다행히도, 4천8백엔이 들어 있습니다. 무사히 도쿄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jc, 202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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