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칸에서 두 시간 가량 조사해서 수집한 자료들을 챙겨들고 신주쿠로 갔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대학 동창인 절친인 이찬우 선생이 저녁 먹자는 고마운 제안을 했기 때문이죠.
(항간에는 제가 취재 다니면서 여성하고만 만난다는 낭설이 있던데,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여사친 못지않게 남사친들과 더 반갑고 빈번하게 만난다는 점을 주지해 주시길 빕니다.)
구단시타에서는 신주쿠에 바로 가는 전철이 있습니다. 신주쿠선인데 정거장 3개만 가면 바로 신주쿠3가입니다. 이 역에 내려서 5분쯤 걸어가면 약속장소입니다.
이찬우 선생은 내가 도쿄에 갈 때마다 시간을 내줍니다. 고등학교나 대학시절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는데, 다른 영역에서 서로 바빴기 때문이겠지요. 대학 졸업하고 못 보는 사이에 비슷하게 공부의 길을 갔고, 전공은 다르지만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나니깐 서로 잘 통하는 겁니다. 하는 일이 겹치는 부분도 많이 생겼고...
이찬우 선생과 도쿄에서 만날 때는 신주쿠에서 만납니다. 도쿄 출장 때면 저는 쇼와칸이나 국회도서관에서 가까운 심바시나 니혼바시에 숙소를 정합니다. 조금 멀어져야 우에노나 아사쿠사에 숙소를 정하는데, 북쪽으로 가는 기차를 우에노에서 타면 편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찬우 선생은 도쿄 시내의 서쪽에 삽니다. 그래서 신주쿠가 중간쯤 되는 것이지요. 신주쿠는 20세기초부터 번화가였으므로 식당 선택 가능성이 많습니다.
신주쿠에서도 기노쿠니야 서점 앞에서 만납니다. 우리가 대학 초년 때 독수리다방이나 종로서적에서 만나곤 했습니다. 그때는 휴대폰도 없었으니까 고정된 약속장소가 필요했고, 그중에서도 종로서적이 인기 있었습니다. 종로서적에서는 메모판을 설치해 놓아서 약속한 사람들이 늦거나 혹은 사정이 생길 때에 메모를 붙여놓을 수 있게 했었습니다.
종로서적의 추억과 관성 때문인지 이찬우 선생은 기노쿠니야 서점 신주쿠 본점 앞에서 약속을 잡습니다. 저는 구글 지도가 시키는대로 찾아가는데, 웬일인지 기노쿠니야 서점의 뒷문으로 데려갑니다.
오늘도 제가 사진과 함께 “도착”이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니, 이찬우 선생이 혀를 차면서 내 쪽으로 왔습니다. 지난번에도 그랬다는 겁니다. 다음부터 앞문으로 오라고 주의를 줬는데도, 또 그런다는군요.
신기한 것이 제게는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런 기억 자체가 없습니다. 이찬우 선생은 어이없을만 하죠. 그래서 이번에는 단단히 맘먹고 기억해 두려고 합니다. 기노쿠니야 책방 뒷문 말고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앞문!!!
지난 5월 이찬우 선생이 ‘도쿄일(東京一)의 튀김집’이라고 데리고 간 식당에서는 적은 양과 높은 가격에 자빠질 뻔 했습니다. ‘비싼 거는 삼가자. 부담 된다’고 부탁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싸고 조용한 데로 가자’고 애걸했더니 이번에는 귀를 기울여 주네요. 2차까지 식당 안팎이 다 분위기 좋습니다. 음식도 좋더군요. 이찬우 선생한테서 요긴한 조언도 많이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이찬우 선생이 식당 정하는 패턴이 특이합니다. 우선 그 일대를 한두 바퀴 돕니다. 그러면서 눈길을 잡아끄는 식당이 나타나면 앞에 전시된 메뉴도 꼼꼼히 봅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은 뭘 먹어야겠다’는 요량이 선다고 합니다.
모르긴 해도 그러는 사이에 갖가지 음식의 맛과 향, 분위기와 풍미 등을 충분히 즐기는 것 같습니다. 눈에 띄는 대로 아무데나 들어가서 얼른 먹고 나오는 저하고는 완전 다릅니다. 하긴, 저는 생존을 위해 먹지만 이찬우 선생은 식사가 생활과 문화입니다.^^
친절하게도 요리 이름을 하나하나 가르쳐주면서 맛과 향, 일본에서의 의미 같은 것을 설명해 주는데, 이 역시 제게는 입력이 잘 안됩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확실히 기억할 수 있게 설명해 주네요. “이건 일본식 곱창전골이야. 무슨 맛으로 먹을래? 간장맛? 카레맛? 된장맛?”
“미소!!!” 제가 아는 단어가 나오길래 반가워서 얼른 대답했습니다. 된장맛 일본식 곱창전골... 맛있더군요. 니혼슈가 술술 넘어갑니다. 덩달아 이야기도 무르익고...^^ (jc, 202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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