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공연 이후 최승희는 미국 서해안의 주요도시들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3월10일 시애틀 공연, 3월15일 포틀랜드 공연, 3월30일 LA 공연, 4월7일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가진 후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견된 자료를 보면, 이 공연들은 흥행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미리 기획하고 진행한 순회공연이 아니었다. 즉, 수시로 들어오는 공연 요청을 그때그때 현지 사정에 맞추어 수용하면서 진행했던 공연 일정이었던 것이다.
예컨대 최승희가 시카고 공연을 단행하기 전에는 그가 시카고 다음에 시애틀에서 공연할 것이라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시카고에서도, 시애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신문에 보도된 최승희의 일정은 전쟁으로 중단된 유럽순회공연을 포기하고, 뉴욕 공연을 마친 후에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예컨대, 1940년 1월27일의 <동아일보>는 최승희의 향후 일정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구주에 동란이 일어나 유감스럽게도 피난선을 타고 뉴욕으로 다시 가게 되었다. 미국에 건너가자 <메트로폴리탄 뮤지칼 뷰로>와 계약을 하여 남미 하바나로 공연의 길을 떠나 거기서 많은 수확을 거두고 지난 12월 중순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 최여사의 이번 도미의 가장 큰 목적은 할리우드의 무용영화를 박으려는 것인데 이일이 원만히 성공되면 더 체류하고 그렇지 않으면 금춘에는 귀국하리라 한다.”
1940년 1월말까지도 최승희의 미국 서해안 공연은 물론 뉴욕 콜롬비아대 공연과 시카고 공연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1월27일까지 최승희의 미국내 공연 일정은 발표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할리우드의 무용영화”를 언급함으로써, 서해안의 LA를 방문할 것이라는 암시는 주었지만, 영화 제작이 여의치 않으면 일본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같은 날짜의 <조선일보>도 최승희가 “미국에 와서는 작년 12월에 뉴욕에서 공연을 가졌고, 그리고 얼마전에 남아메리카를 돌아서 지금은 다시 뉴욕에 와서 당분간 쉬고 있”다면서 “최여사의 귀국은 오는 3월 하순이나 4월 상순경이 될 것으로서 귀국하며는 곧 동경에서 공연을 가진 후 이어서 경성으로 돌아와 대대적 공연을 가지리라”고 전망했다. 즉, 시카고와 미국 서해안 공연 계획은 언급되지 않았고, 최승희가 곧 귀국할 것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한편, 하와이의 일본교포신문 <닛푸지지(日布時事)>도 1940년 2월16일 5면기사에서 최승희가 “유럽전쟁으로 지난해 11월 말 목하 뉴욕에 돌아와, 시카고 등의 각지에서도 큰 호평을 받고 있다”면서, “최근 이곳에 도착한 서신에 의하면 미국순업을 마치면 귀국할 예정이며, 도중인 4월 중순 호놀룰루에 기항하게 되면 그 때 꼭 현지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는 ‘시카고 공연’이 언급되었지만 미국 서해안 순회공연에 대한 언급은 없고, 역시 일본으로 귀국할 예정이며, 귀국길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공연을 희망한다는 소식을 보도한 것이 전부였다.
다만 이 기사는 “원래 중남미 방면에서 공연 신청도 받고 있으며, 만약 이에 응하게 된다면 호놀룰루 기항은 6,7월경이 될 예정”이라면서, 중남미 공연으로 세계 순회공연이 연장될 가능성을 비쳤지만, 미국 서해안 순회공연이야기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았다.
미국 서해안 순회공연이 처음 언론에 보도된 것은 1940년 2월24일의 <신세카이아사히(新世界朝日)신문>이었다. 이 신문의 영문판 7면에 게재된 기사는 “시애틀의 유력 프로듀서 세실리아 슐츠(Cecilia Schultz)씨가 2월23일, 최승희가 3월10일 무어극장(Moore Theatre)에 출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도 최승희의 공연이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 LA 등의 다른 도시 공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언급이 없다. 따라서 이 시애틀 공연도 서해안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개별 공연이 연장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보도가 나온 지 이틀만인 1940년 2월26일자 <니치베이(日米)신문> 영문판1면의 기사는 “최승희가 3월10일 시애틀의 무어극장에 출연한다”고 전하면서도 “그녀는 지금 도쿄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보도함으로써, 서해안 순회공연의 가능성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흘 후 사정이 반전되었다. 1940년 3월1일의 <신세카이아사히신문> 영문판 7면의 기사가 LA와 SF 공연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전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저명한 조선무용가 최승희가 신세카이신문에 보내온 서신에 따르면, 그는 동부지역과 태평양연안 지역에서의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3월14일 SF에 도착할 예정이다. 1938년 유럽에서 64개 공연에 출연한 이후 작년 가을 미국으로 건너온 최승희는 뉴욕시에서만 2번의 공연에 출연했고, 2월22일 시카고 공연을 마친 후 3월10일에는 시애틀에서 공연을 가지게 된다. 그녀는 3월15일 SF공연, 3월19일 LA공연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이같은 일정이 알려진 것은 최승희가 <신세카이아사히신문>에 보내온 편지 때문인데, 신문사는 같은 편지를 근거로 다음날(3월2일)의 일본어판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추가 보도했다.
“반도가 낳은 미인 가희 최승희는 현재 시애틀에서 공연 중인데 조만간 SF 및 LA에서 공연 희망을 갖고 어제 최승희에서 본사로 공연 알선을 요청해 왔다. 최승희 일행이 SF에 오는 것은 아마도 3월 13, 14일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는 최승희가 <신세카이아사히신문>에 공연 알선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즉, 이 즈음에야 최승희와 흥행사는 미국 서해안 순회공연 계획을 세우고, 이를 도와줄 영향력 있는 일본인신문사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미국 서해안 주요도시의 유력 영자지에도 비슷한 협조 서신을 보냈는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서해안 순회공연의 전체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 3월1일과 2일의 <신세카이아사히신문>에 보도된 각지 공연의 날짜가 나중에 모두 바뀌었기 때문이다. 즉 시애틀 공연은 보도된대로 3월10일에 진행되었지만, 3월15일에 포틀랜드 공연이 추가되었고, LA공연은 3월30일, 샌프란시스코 공연은 4월7일로 조정되었다.
한편 LA의 일본교포신문 <카슈마이니치신문(加州每日新聞)> 3월3일자 일본어판 기사에서도 “최승희 여사가 ... 현재 시애틀에 체류 중인데, 소문에 의하면 조만간 SF를 거쳐 LA를 방문, 3월19일경 현지에서 두 번째 공연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장소는 미정.)”고 보도했다.
<카슈마이니치신문>의 기사도 아직 ‘소문’에 근거한 보도였고, LA 공연 장소가 아직 미정이라고 한 점, 그리고 실제로 LA공연이 3월30일에 열렸던 점으로 보아, 이때까지도 정확한 미국 서해안 순회공연의 세부계획이 마련되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다.
1940년 3월4일의 <카슈마이니치신문(영문판5면)>도 “최승희가 3월19일 LA에서 공연할 것”이라면서 “지금은 뉴욕, 시카고 공연을 마치고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는데, 이때도 포틀랜드 공연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미국 서해안 순회공연 기획이 완결되지 않았던 상태가 분명했다.
그러나 1940년 3월10일의 <카슈마이니치신문>이 LA공연이 3월30일 할리우드 여성클럽 콘서트홀(Hollywood Women's Club Concert Hall)에서 열린다고 확정적으로 보도했고, 3월11일 <신세카이아사히신문>도 “일본협회(日本協會)와 시로지 유키(結城司次郞, 1901-1968) 영사의 후원으로, 3월15일에 포틀랜드 공연이 열린다”고 보도했다. 포틀랜드 공연은 <네바스우드 크래프트 오디토리움>에서 열리기로 되었다. 이로써 서해안 순회공연 계획이 완결되었다.
따라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최승희의 미국 서해안순회공연은 처음부터 완결된 순회공연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2월22일의 시카고 공연시기에 구상, 기획되기 시작했고, 3월10일의 시애틀 공연 시기에 전체 계획이 모양을 갖추었다.
이후 최승희는 3월15일 포틀랜드공연, 3월30일 LA공연, 4월7일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차례로 단행하고나서 뉴욕으로 돌아갔다. (jc, 202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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