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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1931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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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1931공연] 3. 귀국 후의 무용 공연 최승희는 1929년 8월말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해 11월초 를 설립했고, 약 10여명의 제자들을 모집해 교육과 훈련을 시키면서 새로운 무용작품을 창작해 나갔다. 귀국 후 첫 공연은 1929년 12월5일 조선극장에서 열린 찬영회 주최의 이었다. 경성 주요 일간지 연예부 기자들의 모임인 찬영회가 조직한 이 공연은 박승희의 토월회가 활동을 재개한 공연이기도 했다. 이 공연에서 최승희는 와 , 등의 세 작품을 발표하면서 조선 무용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곧이어 최승희는 1930년 2월1일 경성공회당에서 를 열고 11곡의 신작품을 발표했다. 9명의 제자들과 함께였다. 이 공연을 마치자마자 2월4-5일 개성의 고려청년회관 강당에서 첫 지방공연도 가졌다. 그해 3월31일과 4월1일에는 단성사에서 두 번째 를 ..
【春川1931公演】 2. 京城から春川まで20時間。 近代化において、交通の発達は核心的に重要である。日帝が朝鮮を侵略して一番最初に鉄道を敷設したのがその例である。1900年に京仁線(濟物浦-西大門)が開通する前は、仁川を経由して入国した外国人が京城に到着するまで約10時間かかりました。京仁線はそれを1時間40分に短縮した。京城市民が濟物浦の共和春に行き、昼食を食べて帰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1905年1月と11月にそれぞれ開通した京釜線と京元線も同様だった。この二つの鉄道が開通したことで、日本は釜山に上陸し、24時間以内に新義州を通過して中国に進出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しかし、京城と春川の間には1939年7月まで鉄道がなかった。今日、京春線の鉄道延長は約90キロメートルで、鉄道で約1時間しかかかりません。しかし、河野萬世が著したによると、1925年の京城-春川道路は地形が険しく、道路が不十分で、車で20時間かか..
[춘천1931공연] 2. 경성에서 춘천까지, 자동차로 20시간 근대화에서 교통 발달은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면서 가장 먼저 철도를 부설한 것이 그 예이다. 1900년 경인선(제물포-서대문역)이 개통되기 전에는 인천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들이 경성에 도착하기까지 약 10시간이 걸렸다. 경인선은 그것을 1시간40분으로 줄였다. 경성 시민들은 제물포의 중식당 공화춘에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올 수 있게 됐다. 1905년 1월과 11월에 각각 개통된 경부선과 경원선도 마찬가지였다. 이 두 철도가 개통됨으로써 일본은 부산에 상륙해 24시간 안에 신의주를 통과해 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경성과 춘천 사이에는 1939년 7월까지 철도가 없었다. 오늘날 경춘선 철도 연장은 약 90킬로미터이며 철도로 약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코노 반세(..
【春川1931公演】 1. 崔承喜の春川公演 崔承喜の舞踊は春川で2回公演された。最初の公演は1931年2月に春川公会堂で行われ、1938年7月には春川邑愛館で崔承喜の舞踊映画「大金剛山の譜」が上演された。 一方、1942年2月には崔承喜の師匠である石井漠の春川公演も行われた。1942年の石井漠公演は、日中戦争(1937-1945)と太平洋戦争(1941-1945)中に行われたもので、日帝の国民総動員令の下、官邊団体である朝鮮軍事普及会の主催で行われた公演であった。 そのため、この公演は芸術公演というよりは宣伝公演に近かったと思われる。 石井漠公演は関連記録が全くなく、公演場所がどこだったのかも明らかになっていないが、おそらく春川公会堂であったと推測される。当時、春川には劇場が公会堂と邑愛館しかなく、そのうち公会堂の方が少し大きく、公権力が動員しやすかったからだ。 1938年のの上映は、崔承喜が直接春川を訪れて公演したわけではなか..
[춘천1931공연] 1. 최승희의 춘천 공연 춘천에서는 최승희의 무용이 두 번 공연되었다. 첫 공연은 1931년 2월 춘천공회당에서였고, 1938년 7월 춘천 읍애관(邑愛館)에서는 최승희의 무용영화 가 상연되었다. 한편 1942년 2월에는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의 춘천 공연도 열린 바 있었다. 1942년의 이시이 바쿠 공연은 중일전쟁(1937-1945)과 태평양 전쟁(1941-1945) 중에 열렸던 것으로, 일제의 국민총동원령 아래 관변단체인 조선군사보급회 주최로 개최된 공연이었다. 따라서 이 공연은 예술 공연이라기보다는 선전 공연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시이 바쿠 공연은 관련 기록이 전혀 없어서 공연 장소가 어디였는지도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춘천공회당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춘천에는 극장이 공회당과 읍애관 뿐이었고, 그중 공회당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