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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추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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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7-3.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 <아사히신문> 보도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2에 있습니다.] 다음은 도쿄의 기록학 전문가 크누기 에나(功刀惠那) 선생이 아사히신문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서 찾아주신 도쿄판과 오사카판의 기사이다. 두 기사는 대동소이하며, 실수나 오자까지 동일한 것으로 보아 한 기사가 다른 기사를 거의 전재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과 소제목) 다이너마이트 폭발/ 4명 사상/ 다카라즈카 오지의 터널 공사에서/ 모닥불로 말리는 동안 “(기사본문) 26일 오전 8시 반 경에 효고현 다카라즈카의 변방 나가오산 중의 후쿠치야마선 6호터널의 터널 굴착 공사에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 10개가 빙결되어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조선인 토공 3명이 철망 위에 올려놓고 모닥불에 말리던 중 실수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7-2.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 <고베유신일보> 기사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1에 있습니다.] 다음은 정세화 선생이 고베중앙도서관에서 찾아내신 1929년 3월28일자 의 기사 전문이다. 이 기사도 역시 정홍영 선생의 저서 자료편에 스크랩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1부 2장의 내용으로 미루어 이 기사는 의 기사와 함께 가장 많이 참조된 기초자료인 것으로 보인다. (제목과 소제목)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해/ 네 명이 즉석에서 사상/ 뇌관을 모닥불로 건조시키려다/ 나가오산 터널 입구에서 발생한 사고 (기사 본문) “26일 오전 8시경 가와베군 니시타니촌 키리하타 나가오산 제6호 터널 입구(간자키 기점 15마일 동쪽)에서 전선 후쿠치산선 개수공사에 종사 중이던 조선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 출신의 조선인 ..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7-0. 경남 고성, 조선인 희생자들의 고향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9에 있습니다.] 내가 정홍영 선생의 저서 를 읽기 시작한 것은 정세화 선생이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신 그 책의 챕터 두 개부터였다. 이 책은 1997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절판됐기 때문에 아마존에서도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약 일주일 만에 정세화 선생은 그 책을 우편으로 보내셨다. 책 내용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자, 아예 책을 속달로 보내신 것이다. 저자이신 부친의 마지막 소장본이 아닌가 싶었는데, 선뜻 보내주신 것이 고마웠다. 나는 마음을 더욱 다잡고 조사에 열심을 내기로 했다. 을 읽어보니, 정홍영 선생은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대단히 실증적인 연구를 남기셨음을 알 수 있다. 이 책 제1부에 수록된 12..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6. 4개의 신문기사와 3장의 매장인허증 [이 취재기록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8에 있습니다.] 는 4개의 신문기사와 3장의 매장인허증에서 시작되었다. 등 4개 신문사의 1929년 3월28일 기사와 니시타니 촌장이 발행한 사망자의 매장 허가증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기초자료가 발견된 경위는 정홍영 선생의 저서 (1997, 이하 )에 기록되어 있다. 정홍영 선생은 1985년 봄, 3명의 조선인 사망자에게 발행된 매장인허증을 처음 입수했다. 그가 연초부터 “다카라즈카에 시(市)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의 료겐(良元), 코하마(小浜), 나가오(長尾), 니시타니(西谷) 각 촌의 자료 속에 조선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지 조사”하던 중에, 다카라즈카 시사(市史) 편찬실의 편집담당주사 와카바야시 야스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5. 외국인시민 문화교류협회와 목련회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7에 있습니다.] 에 새겨진 비문에 따르면 이 추도비의 건립을 담당한 것은 과 , 그리고 의 세 단체이다. 추도비 건립의 이유와 날짜 다음에 이 세 단체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정계향 선생의 논문(2019:146쪽)은 세 단체를 비교적 자세히 서술해 놓았다. 가장 먼저 생긴 것은 이다. 1990년대 초반에 김예곤 선생이 자신의 회사에 일본계 브라질인을 수십 명 고용하면서, 이들이 겪는 언어문제와 거주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를 창립했다. 처음에는 외국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재일 조선인을 위한 활동의 비중이 커졌다. 창립자이자 초대회장인 김예곤 선생이 재일 조선인이었고 다카라즈카에 거주..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4. 추도비의 세련된 디자인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6에 있습니다.] 는 아주 세련된 비석이다.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편찬한 에는 일본 전역에 산재한 170여개의 추도비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출판된 이후에 건립된 는 여기에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어떤 추도비와 비교하더라도 그 현대적 감각과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인다. 추도비는 상하 2개의 장방형의 돌이 겹쳐져 구성되었고, 각각의 가장자리에는 돌을 자르기 위해 구멍을 낸 자국을 그대로 남아 두었다. 앞면에는 의 글씨를 중심으로 윗돌과 아랫돌에 각각 세 개씩의 줄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어져 있고, 글씨의 위쪽에는 양쪽에 두 명의 아기 천사 모습이 청동 조각으로 부착되어 있다. 아래쪽 돌에도 꽃을 묘사한 ..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3. 기리히타의 철도공사 <순직자비>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5에 있습니다.] 의 뒷면에는 또 하나의 이례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다. 후쿠치야마선 공사에서 순직한 다른 노동자들의 추도비가 세워진 위치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이다. “「후쿠치야마선 부설공사 순직자비」는 키리하타 다치아이신덴에 있습니다.” 후쿠치야마선 철도는 1891년 7월 아마가사키-나가스 사이의 가와나베 철도로 시작되었다. 이 철도는 같은 해 9월에 이타미, 1897년 다카라즈카, 1898년에는 나마제까지 연장되었고, 1912년에는 아마가사키에서 후쿠치야마까지의 전 노선이 개통되었다. 키리하타에 세워진 는 1891년부터 1912년까지의 후쿠치야마선 부설공사에서 희생된 순직자들을 기리는 추도비이다. 이 는 1979년 ..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2. 나카가와 도모코 시장의 추도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4에 있습니다.] 에는 다른 조선인 추도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 있다. 당시의 다카라즈카 시장 나카가와 도모코(中川智子)씨의 글씨를 함께 새긴 것이 그것이다. “추도합니다(悼). 다카라즈카 시장 나카가와 토모코 씀.” 추도비의 뒷면에 새겨진 이 문구는 의 지역사적 의미를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다카라즈카 시정부의 대표가 추도비 건립에 공개적으로 찬성했을 뿐 아니라,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글을 직접 써서 추도비에 새겨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되었다는 점과 그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는 것은 한일 양국의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