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하수2025보성

[은하수2025보성] 12. 소록도와 한센병

다음 목적지가 소록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거기는 왜지?”하는 생각이 들였다. 이번 은하수 소풍의 주제가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봉강 정해룡 선생과 그의 가족의 수난사를 살피는 것이라면, 소록도도 그 주제와 어떤 접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녹도(鹿島)가 소록도(小鹿島)가 된 사연도 궁금했다. 조선 시기에 제작된 <대조선국전도(1892)>에는 소록도가 없고 녹도가 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조선전도(1925)>에도 이 섬은 녹도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 섬은 언제, 그리고 왜 소록도로 개명되었을까?

 

 

녹도-소록도 의문은 쉽게 풀렸다. 소록도가 건너다보이는 고흥반도의 끝부분의 이름이 녹도였고, 지금은 녹동(鹿洞)이라고 불린다. 조선시대에 녹도는 중죄인의 유배지였기 때문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녹()’라고 불렸던 것 같다. 녹동 해안에서 건너다보이는 작은 섬이 소록도인데, 언제부터 그 이름이 사용되었는지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 녹도와 같은 읍에 있는 작은 섬이라는 뜻으로 소록도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소록도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보면서 방문 이유가 이해됐다. 소록도는 대한제국 시기에 개신교의 자혜의원(1910)으로 시작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소록도자혜의원(1916), 소록도갱생원(1934)을 거쳐, 해방 이후 중앙나요양소(1949), 소록도갱생원(1957), 국립소록도병원(1960)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유지되었는데, 이는 환자들에 대한 배제와 격리, 인권 억압의 역사였다.

 

사실 한센병, 속칭 나병(癩病)에 대한 내 인식은 일천하다. 성경의 나병 환자에 대한 서술과 영화 <벤허(1959)><킹덤 오브 헤븐(2005)>에 나온 나병 환자를 본 것이 전부였다.

 

 

성경은 나병을 신의 저주로 묘사한다. 유대민족의 해방자 모세를 비방했던 미리암(민수기 1210-15), 선지자 엘리사의 사환으로 뇌물을 받고 거짓말했던 게하시(열왕기하 527), 제사장의 권한을 침범했던 왕 웃시야(열왕기하 155)가 나병에 걸렸다.

 

<벤허>의 나병도 기독교가 배경이다. 벤허의 어머니 미리암과 여동생 티르자가 나병에 걸려 환자들의 계곡에 격리되었는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 모녀의 나병이 치유된다. 나병의 발병이 신의 저주라는 설정 대신, 예수의 희생으로 치유된다는 설정이다.

 

 

<킹덤 오브 헤븐>의 나병 환자는 12세기 십자군 전쟁 중의 예루살렘 왕 보두앵 4(Baudouin IV, 1161-1185, 별명 나병왕 보두앵(Baudouin le Lépreux))이다. 그는 13세에 나병 진단을 받았고, 15세에 왕위에 올랐다가 24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영화 속에서는 보두앵 4세가 얼굴에 번진 나병을 가리기 위해 철가면을 쓰고 등장하는데, 무슬림의 왕 살라딘(صلاح الدين الأيوبي, Salah ad-Din Yusuf ibn Ayyub, 1137-1193)이 적수인 보두앵 4세의 리더십과 용기에 경의를 표하면서 의사를 보내주겠다고 제안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나병은 기원전 2000년경의 이집트와 기원전 600년경의 인도, 기원전 400년경 알렉산더의 메소포타이마와 인도 침공의 기록에 남아 있고, 십자군 전쟁 말기인 13세기에는 나병 환자를 격리시킨 수용소(Leprosarium), 즉 유럽 최초의 나환자촌이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71년 노르웨이의 게하르드 한센(Gerhard Hansen, 1841~1912)이 나병의 원인이 한센균일지 모른다고 발표했고, 1879년에는 독일의 루드비히 나이저(Ludwig Neisser, 1855-1916)가 한센균이 나병의 원인균임을 확인했다.

 

 

나병의 치료제가 개발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1915년경 미국의 흑인여성 연구자 앨리스 볼(Alice Ball, 1892-1916)이 개발한 볼 치료법(Ball Method)이 나병 치료에 효과적임이 입증되었고, 이후 항생제 연구개발이 진전됨에 따라 1937년에 댑손(dapsone), 1950년경에 클로파지민(clofazimine), 1967년에 리팜핀(rifampin)이 치료제로 도입되었으므로, 1970년대에는 이 세 항생제를 보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나병은 완전히 치료 가능해 졌다.

 

 

지금은 소록도 주민들도 환자가 아니라 한센병의 치료로 완치 후에 남은 후유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반인일 뿐이다. (jc, 2025/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