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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2025보성

[은하수2025보성] 9. 꼬막 정식

둘째 날 점심은 꼬막 정식이었다. 벌교 취재를 여러번 왔었고, 꼬막정식 간판이 즐비한 벌교 시내 식당가를 오가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도 주문해 보지 못한 메뉴였다. 은하수 소풍으로 벌교에 다시 온 내게 꼬막정식은 개인적으로 무척 벼르던 음식이다.

 

정해열 선생이 예약한 식당은 벌교천의 동쪽 천변, 소화교와 부용교 딱 중간 지점, 벌교상고 옆 <홍도회관>인데, 일행이 커다란 버스로 이동하다 보니 주차장이 넓어야 한다는 조건을 갖추었고, 작은 방들과 커다란 연회장, 그리고 야외 식탁까지 설치할 수 있는 큰 식당이다.

 

 

꼬막 정식은 한국의 지역 특식 10에 드는 음식이다. 여기에는 (1) 서울의 설렁탕, (2) 부산 밀면, (3) 전주 비빔밥, (4) 강릉 초당두부, (5) 제주 흑돼지, (6) 안동의 간고등어, (7) 순천/벌교의 꼬막정식, (8) 대구 막창구이, (9) 청주 올갱이국수, (10) 광주 무등산 보리밥 등이 꼽히는데, 이날 꼬막정식 점심식사로 나는 한국의 10대 지역 특식 투어를 완결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목록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목포의 세발낙지나 영산포의 홍어, 남원의 추어탕, 포항 과메기는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더라도, 통영 굴국밥, 나주 곰탕, 제주 고기국수, 춘천 막국수 등도 목록에 오를 법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맛맹이자 요리에 젬병인 나는 각 지역 특산 음식에 대해서 이렇쿵저렇쿵 할 처지는 아니다. 누가 먹어도 맛없는 음식과 누가 먹어도 아주 맛있는 음식은 구별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다 맛있게 느끼는 사람이니, 각 요리의 특징이나 그 맛과 영양을 설명할 능력은 없다.

 

그런 맛맹한테도 꼬막정식은 깊은 인상을 준다. 꼬막정식의 기본은 꼬막회무침이었다. 삶은 꼬막 살을 파와 무채, 오이채 등의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으로 버무렸는데, 사과나 배를 채 썰어 섞으면 아삭한 맛이 더해질 것 같았다. 꼬막회무침은 각종 나물과 함께 비빔밥을 만들어 먹도록 되어 있었는데, 참기름과 김 가루를 뿌리니까 풍미가 좋아진다.

 

 

비빔밥에 꼬막이 모자란 듯해서 하프쉘(half shell) 양념꼬막을 몇 개 파내어 비빔밥에 섞으니까 짭쪼름한 간이 진해지고 쫀득쫀득한 식감이 더해졌다. 꼬막 하나하나에 일일이 양념을 얹은 양념꼬막은 한 장 한 장에 양념을 바른 깻잎무침을 연상시켰다. 상에는 입을 다문 꼬막조개도 올랐는데, 일부러 까는 재미를 즐기는 게 아니라면 손은 양념 꼬막으로 향하게 된다.

 

입을 다문 꼬막조개를 까기 위해 숟가락을 사용해야 했던 것을 보면 이 꼬막은 새꼬막이다. 벌교 앞바다 갯벌에서 파내는 참꼬막과 달리 새꼬막은 양식된다고 한다. 참꼬막은 쫄깃쫄깃한 맛이 좋아서 왕에게 진상하거나 조상의 제사상에 올렸다고 한다. 새꼬막은 숟가락으로 경첩부분을 비틀어야 깔 수 있기 때문에, 벌교에서는 똥꼬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참꼬막이 먹을 만한 크기로 자라는 데에 4년이 걸리는데, 새꼬막은 양식으로 2년 정도 기른다고 한다. 4년이든 2년이든, 꼬막을 먹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는 줄 몰랐다.

 

꼬막 정식에는 꼬막회무침 비빔밥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꼬막된장국이 나오는데, 꼬막과 두부와 대파가 든 된장국은 구수한 냄새와 식감이 둘 다 빼어났다. 그밖에도 꼬막정식에는 꼬막전도 포함됐는데, 전으로는 탁월했지만 꼬막의 풍미는 좀 덜했다.

 

 

벌교가 주요 무대인 소설 <태백산맥>이 당연히 꼬막을 언급했다. 내 기억에 남은 <태백산맥>의 꼬막 서술은 두 번이었다. 정하섭과 함께 밤을 지낸 소화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꼬막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장면과, 염상구가 외서댁을 범하면서 쫄깃한 겨울 꼬막 맛이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었다.

 

 

염상구의 혼잣말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느낌이어서 읽을 때 불편했는데,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을 보면 조정래 선생의 비유법이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벌교 시내의 꼬막정식 식당 중에는 외서댁 꼬막나라라는 간판을 단 집이 있을 정도다.

 

 

꼬막비빔밥은 전주비빔밥과 회덮밥의 사촌이겠는데, 갖은 채소와 초고추장이 공통인 반면 회나 육회 대신 삶은 꼬막이 비빔밥을 강조하는 차이가 있다. <홍도회관>은 비빔밥을 위해 스테인레스 대접을 제공하던데, 사기대접이나 하다못해 플라스틱이라도 밝은 색 그릇을 쓰면 비빔밥의 비주얼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jc, 2025/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