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벌교는 일제강점 아래서나마 빠르게 성장하는 소도시였다. 1930년의 벌교읍 인구는 약 2만3천명, 1940년에는 약 2만5천명이었다. 1930년의 경성의 인구가 약 30만명이었으므로 벌교는 그 1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도시였지만, 전라남도에서는 광주(6만5천명)와 목포(6만4천명), 여수(3만7천명)와 순천(2만8천명)에 이어 5번째로 큰 도시였다.
1920년대 초까지도 벌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학생순회 강연단이 벌교를 방문해 기록한 감상문(매일신보 1921년 8월15일, 4면)을 보면 “큰 강과 작은 바다가 연접하여 항구로 적합하고, 보성의 상업지역으로 역사가 오래며, 증기선으로 고흥반도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자 농산물이 풍부한 곳”이기는 하지만 “학교가 공립보통학교 하나뿐이고, 여학생이 2명밖에 배출되지 못한” 낙후지역으로 묘사되었다. 또 1923년 4월15일 매일신보(3면)은 “벌교에 모루히네(=몰핀) 중독자가 많은 폐단”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부터 벌교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벌교에 보성진흥회가 결성되어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했고(매일신보, 1924년 4월8일, 4면), 아편중독자 수용소가 설치됐고(매일신보, 1924년 10월5일 6면), 어시장이 설치됐고(매일신보, 1924년 9월9일, 4면), 공원이 조성되어 일본인들이 여기에 신사를 설치했다. (매일신보, 4월26일, 4면)
1925년에는 부산-벌교의 열차가 운행을 개시했고(부산일보, 1925년 6월2일, 7면), 여수-벌교간의 신항로가 열렸고(부산일보, 1925년 9월10일, 2면), 전기회사가 설립되어(시대일보, 1925년 10월11일, 1면) 그로부터 3년후인 1928년 10월에는 벌교읍내에 전등이 점등되었다(매일신보, 1928년 10월14일, 3면).
1926년 11월 벌교에 신시장이 개설됐고(부산일보, 1926년 10월29일, 4면), 1927년에는 벌교의 상,하 2개 시장이 합병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중외일보, 4월2일, 4면). 또 벌교등기소와 광주지방법원의 벌교출장소가 설치됐는데(부산일보, 1927년 6월19일자, 3면; 6월21일, 9면), 이는 벌교에 상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와 함께 1927년에는 벌교의 각 상점의 점원들이 단결해 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중외일보, 1927년 7월15일, 4면), 유흥시설이 없던 벌교에 당구장이 개업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부산일보, 1927년 4월18일, 4면)
1928년에는 벌교포소학교가 낙성되어 학교가 2개로 늘어났고(부산일보 12월25일, 5면), 2년 후에는 벌교유치원이 개원했다(중외일보, 1930년 5월23일, 4면). 1929년에는 광주-벌교간 자동차(버스)노선이 개통되어(부산일보, 1929년 3월10일, 3면) 철로와 항로에 이어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1929년 순천군 동초면이 폐면되면서 5개리가 벌교면에 병합되어 지역이 확대됐고(부산일보, 1929년 4월9일, 3면), 1928년에 시작된 벌교 하천정리와 사방공사가 1930년에 준공되어 띠모양의 벌교가 방형으로 확장되면서 벌교의 유가지가 약 6만평 증가했다(부산일보, 1928년 12월16일, 5면; 매일신보 1929년 12월25일, 3면; 부산일보, 1930년 12월2일, 6면).
1930년의 국세조사에 따르면 벌교의 인구가 4,615가구의 22,653명으로 전기 국세조사대비 4천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조선인이 21,846명(96.4%), 일본인이 597명(2.6%)였고, 중국인도 210명(0.9%)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구로 본 1930년대의 벌교는 전남에서는 나주와 강진보다 컸고, 전북의 이리와 김제보다 큰 도시였다. 최승희는 공주와 천안, 이리와 김제 등 벌교보다 인구가 적은 도시에서 공연한 바 있었고, 특히 신천과 재령, 의주와 정주와 선천 등 벌교 인구의 절반에 못 미치는 더 작은 도시들에서도 공연회를 열었다.
이 같은 사실을 고려할 때 최승희가 1920년대 중반 이래 빠르게 성장하던 신흥 소도시 벌교에서 무용 공연을 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되었다. (jc, 202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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