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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1934공연

[도쿄1934공연] 18. 공연1부(6) <희망을 안고서>

최승희 도쿄 데뷔공연 1부의 마지막 작품은 <희망을 안고서(希望いて)>였다. 프로그램에는 이 작품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6. 희망을 안고서(希望いて), 사라사테 곡, 이시이 미에코(石井美笑子), 최승희

 

 

2인무 <희망을 안고서>의 창작 시기는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1936:126)>에 서술되어 있다.

 

“이 사이에 최초로 발표한 것이 사라사테의 「안달루시안 로맨스」를 반주로 만들어진 듀엣 「희망을 안고서」이고, 이어서 만들어진 것이 조선 고곡에 의해 조선 고유의 갓을 쓰고 춤추는 「에헤야 노아라」입니다. 모두 이시이 선생님의 신작 발표회에서 처음으로 발표해 다행히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사이란 최승희가 두 번째로 일본에 건너갔던 19333월부터 데뷔 공연을 하게 된 19349월까지를 가리킨다. 그런데 <에헤야 노아라>가 초연된 것이 1933520, 일본청년관에서 열린 <근대여류무용대회>였으므로, <희망을 안고서>가 창작된 것은 193333일부터 520일 사이의 일이다. 최승희는 <근대여류무용대회>에서 <에헤야 노아라>와 함께 <엘레지>를 발표했으므로, 석 달이 채 안 되는 시기에 세 개의 작품을 안무해 내는 왕성한 활동을 보인 것이다.

 

 

조선의 여성잡지 <신여성> 19345월호는 <희망을 안고서>의 초연이 “193311, 도쿄에서라고 설명했는데, 실은 19331022일 히비야공회당에서 열린 <이시이무용단공연>에서였다. 이 공연에서 이시이 바쿠의 <연미복을 입은 도쿄(燕尾服をつけた東京)>와 이시이 에이코의 <스페인 야곡>과 함께 최승희의 <희망을 안고서>가 초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여성>은 또 <희망을 안고서>“1931년의 작품이라고 서술했다. 최승희의 경성시절 발표된 작품목록을 살펴보았지만, 거기에는 <희망을 안고서>라는 연목이 없다.

 

 

1931년에 발표된 최승희의 2인무를 골라냈더니, 단성사에서 열렸던 3개 발표회에서 상연된 2인무는 8개였다. 110-12일의 <최승희 제3회발표회>에서 발표된 <정토의 무희(이옥희, 장계성)>, <그들의 로맨스(최승희, 이옥희)>, <남양의 정경(최승희, 김은파)>; 51-3일의 <3회 신작공연 최승희무용회>에서 발표된 <남양의 밤(최승희, 장계성)>과 어린이 무용 <앞으로 앞으로(이정자, 조영숙)>, 91-3일의 <4회 신작무용발표회>에서 발표된 <토인의 애사(김민자, 조영숙)><철과 같은 사랑(최승희, 김민자)>, <이국의 밤(이정자, 노재신)> 등이었다.

 

이중 최승희가 출연한 2인무는 <그들의 로맨스><남양의 정경>, <남양의 밤><철과 같은 사랑>이었는데, 아마도 <남양의 밤(5)><남양의 정경(1)>의 개작이고, <철과 같은 사랑(9)><그들의 로맨스(1)>의 개작인 것으로 보인다.

 

 

193118일자 <동아일보(5)>에 실린 <그들의 로맨스>의 사진은 최승희와 이옥희가 가난한 연인의 사랑을 이어가는 모습을 담았고, 사진 설명은 그들의 로맨스는 슬프고 장하다. 비록 역경에서 로맨스를 짓는 자이나마 힘차게 굳세게 나아가자라고 서술했다.

 

, <그들의 로맨스(19311)>는 역경에서나마 희망을 가지고 꿋꿋하게 사랑을 이어간다는 내용인데, 이내 <철과 같은 사랑(19319)>로 개작 및 개명된 것으로 보이며, 마침내 <희망을 안고서(1934)>으로 다시 한 번 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망을 안고서>의 반주음악은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1844-1908)<안달루시아의 로맨스(The Andalusian Romance)>이다. 사라사테가 1878년 스칸디나비아 순회공연 중에 작곡, 1879년에 출판된 이 작품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요 3개의 주제를 나란히 배열한 것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며, 빠르고 경쾌한 멜리디가 특징이어서, 최승희가 <희망을 안고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연주시간이 5분이 넘기 때문에 <희망을 안고서>는 상당히 긴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승희의 데뷔공연에서는 피아노는 하야시 토시오(林利夫) 바이올린은 오리타 이즈미(折田泉, 1909-1972)가 연주했었다. 오리타 이즈미는 최승희의 데뷔공연에 반주로 참가하던 중에 최승희의 후배 이시이 미도리(石井みとり, 1913-2008)와 사랑에 빠졌고, 이듬해 1935년에 결혼했다. 미도리와 오리타 이즈미 사이의 딸 오리타 카츠코(折田克子)도 무용가로 활약하면서 엄마와 함께 이시이미도리 무용연구소를 이끌었다. (jc, 2024/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