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터(廢墟の趾, 1934)>은 최승희의 도쿄 데뷔공연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폐허의 흔적>의 배경 음악은 모데스트 무소로그스키(Модест Петрович Мусоргский, 1839-1881)의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1886)>의 10개 작품 중에서 두 번째 작품 <고성(Vecchio Castello, 1874)>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화가이자 무소로그스키의 친구였던 빅토르 하르트만(Viktor Hartmann, 1834-1873)이 사망하자, 그의 마지막 전시회에 걸렸던 그림을 소재로 작곡한 작품이다.
무소로그스키가 작곡할 때(1874년 6월)에는 피아노 모음곡으로 작곡되었지만 출판되지 않았고, 1886년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y Rimsky-Korsakov)가 처음으로 출판했다. 1922년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것이 오늘날 널리 연주된다.
관현악 연주에서는 <고성> 연주에 약 5분정도 걸리므로, <폐허의 터>은 다소 긴 작품이었을 것이다. (물론 편곡을 통해 길이를 조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최승희의 데뷔 공연에는 오케스트라가 없었으므로 <폐허의 흔적>은 피아노곡으로 반주되었을 것이다. 피아노 연주는 하야시 토요시(林利夫)가 맡았다.
최승희의 독무로 발표된 <폐허의 터>는 “백제의 고도에 있는 반월성을 방문했을 때 받은 느낌을 춤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해설되었다. 반월성(半月城)이란 “반달 모양으로 쌓은 성”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이다. 경북 경주시 월성이나 개성과 포천의 성도 모두 반월성이다.
그러나 “백제의 고도에 있는 반월성”이란 부여의 금성산성(金城山城)을 가리킨다. 이는 부소산 동남방 121미터 고지인 금성산에 있는, 부소산성에 못지않게 장대한 성으로, 백제의 수도 부여의 왕궁과 왕도 방비를 위하여 축성된 것이다.
금성산성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계백의 동남방 최후 방어선이었다. <삼국사기>는 백제가 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나당연합군을 부소산성 안으로 몰아넣고, 사비남령에 올라 4,5곳에 목책을 세워 백제부흥군의 거점으로 삼았다”고 기록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사비남령은 금성산성으로 추정된다.
최승희가 언제 부여의 금성산성을 방문했는지는 기록된 것이 없다. 만일 경성시절 활발하게 진행했던 지방공연 일정 중에 부여를 방문했었다면, 군산(1931년 3월4-5일; 11월30일), 대전(1930년 11월11일, 1931년 11월26일; 1932년 5월10-11일), 공주(1932년 5월19-20일), 전주(1931년 3월2-3일; 1931년 11월29일) 공연 시기 전후에 부여를 방문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승희의 <폐허의 터(1934)>는 조택원의 <부여회상곡(1942)>과 비교된다. <폐허의 터>는 백제멸망의 애상을 표현한 작품인 반면, <부여회상곡>은 내선일체의 역사적 당위성을 조작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친일작가와 친일예술가들을 총동원한 무대극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1941년 7월호 <삼천리>에 실린 “국민무용 무여회상곡 상연보고”의 일부이다.
“상연의도 - 무용시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조선문화의 앙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대의 사실(史實)을 통해 내선일체의 이념을 보다 강화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공연은 6일 동안 성황을 이루었고 특히 미나미총독 각하를 시작으로 군부, 관청, 연맹의 높으신 분들이 관람하여 주신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 도쿄 이시이바쿠연구소에서도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내선(內鮮) 예술가의 합작에 따른 결과물인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일본 여성잡지 <신여원(新女苑)>은 1941년 3월호에 최승희의 <백제궁녀의 춤>의 사진을 게재했다. 최승희는 내선일체의 선전물에 불과한 <부여회상곡> 출연을 거부하고, 이에 대항하여 <백제궁녀의 춤>을 발표한 것이다.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예술가로서 아찔할 만큼 용감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 아닐 수 없다. (jc, 202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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