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초 서울로 돌아온 뒤로 한동안 조선인 추도비를 잊고 있었다. 이미 조사한 최승희 관련 자료들이 상당히 쌓였기 때문에 이를 분류하고 번역해 정리하는 데에 여러 달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정세화 선생은 내가 최승희 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도와주셨다.
2018년부터 2년여 동안 일본의 42개 도시에서 수집해온 최승희 관련 자료 중에는 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 많아 흥미로웠지만, 애써 수집한 자료 중의 일부는 제대로 읽거나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복사된 자료들 중에는 읽지 못할 정도로 활자가 흐리거나 뭉개진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본이 그런 경우도 있었고 복사가 잘못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체로 1930년대 후반 이후의 신문 기사들은 원본이 좋지 않았는데 이는 1937년 중일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제의 물자 통제로 신문 인쇄에 필요한 잉크도 배급제가 실시됐고, 따라서 신문사들은 상시적으로 잉크가 모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부터 일제 패전까지의 신문들의 인쇄는 상태가 매우 나빴다.
활자를 읽을 수 있는데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1920-30년대의 일본어는 철자와 용례가 현대 일본어와 다른 점이 꽤 많았다. 오늘날 일본 대학입시에서 ‘현대일본어’와 별도로 ‘일본어 고문’ 과목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 고문 과목에는 메이지유신(1876)이래 1930년대까지의 글들이 많이 출제된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어 고문에 해당하는 1930년대의 신문기사를 읽을 때는 오늘날의 사전이나 번역기가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정세화 선생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셨다. 정세화 선생과 둘이서 연락하던 라인(LINE) 방에 콘도 토미오(近藤富男) 선생과 신도 도시유키(真銅敏之) 선생을 초대해서 함께 문자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셨다. 내가 자료를 읽다가 막히면 그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서 라인 단톡방에 올렸고, 콘도 선생과 신도 선생께서 시간 되시는 대로 그 부분을 읽어주시고 해석도 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수집해 온 자료들을 쑥쑥 읽어나갈 수 있었고, 필요한 부분들은 번역해서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게 됐다.
라인 단톡방을 통해 이루어진 일이 또 하나 있었다. <무용신 보내기> 2차 캠페인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1차 캠페인 때부터 이인형 선생의 합류로 활력과 추진력이 생겼는데, 일본에서도 콘도 토미오 선생과 신도 도시유키 선생께서 참여하시기로 한 것이다.
일은 점점 커져서 일본에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팀아이>가 결성되었고, 콘도 토미오 선생께서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셨다. <팀 아이(チームアイ>라는 이름도 콘도 토미오 선생께서 직접 지으셨는데 “아이들을 사랑(愛)으로 지켜보며(eye) 돕는 팀”이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회원 모집도 이뤄져서 약 15인의 회원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일본 <팀아이> 출범에 자극을 받아 한국 <팀아이>도 결성되었다. 9명의 회원들이 모여 조선학교 무용부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 <팀아이> 회원은 아직 공개모집할 단계가 아니었으므로 이인형 선생과 나의 대학 동문들이 대부분이었다. 먼저 황웅길, 강충호, 정철훈, 권홍우 선생이 참여하셨고, 곧이어 정회선, 이원영, 조성무 선생도 합류해 주셨다.
일본 <팀아이>는 재일 외국인 학생들을 전체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단체의 목적이었지만, 한국 <팀아이>는 지원의 대상을 재일 조선학교로 규정했다. 그러나 일본, 특히 다카라즈카가 속한 효고현에서는 외국인 중 재일조선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80% 이상이었으므로 한국과 일본의 <팀아이>가 재일 조선학생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는 셈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팀아이>가 협력해 이룬 첫 번째 사업이 제2차 <무용신> 캠페인이었다. 고베에서 오사카와 교토를 거쳐 나고야 지역에 이르는 일본 깅키(近畿) 지역의 조선학교 무용부 학생 160명에게 무용신을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두 번째 <무용신> 프로젝트도 성공적이어서, 일본 <팀아이>의 회장이신 콘도 토미오 선생께서 2020년 11월 오사카에서 열린 <깅키지역 중앙예술경연대회>에 참석해 학생들에게 직접 무용신을 전달해 주셨다. (jc, 202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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