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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14학교

[대륙14학교] 6. 김진향 강연 (4) 코시로 유키코(小代有希子)

김진향 선생의 강연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한반도 분단의 기원을 나름 조사한 결과를 6하 원칙이 포함되도록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한반도의 첫 분단선은 1945725일부터 194592일 사이에 일제가 꾸미고, 미국이 주도하고, 소련이 호응한 결과입니다. 일본은 자국의 분할을 막기 위해 조선의 분할을 유도했고, 미국은 일본을 모두 차지하고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38도선을 그었습니다. 소련은 일제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회복하고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에 만족했습니다. 그 결과가 북위38도의 군사분계선이고, 그것이 오늘날 한반도 분단의 기원이 된 것이지요.

 

 

 

이런 설명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20년 전 일본인 동아시아 사학자 코시로 유키코(小代有希子)가 미국역사학회의 학술지 <The American Historical Review(20044, 통권1092: 417-444)>에 발표한 내용이더군요. 논문의 제목은 유라시아의 퇴락: 일본의 2차대전 종전 게임(Eurasian Eclipse: Japan's End Game in WWII)”입니다. (번역본을 찾지 못했으므로 영문 논문을 첨부해 드립니다.) 코시로 유키코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이 항복을 지연시키는 과정에서 자연히 미국과 소련은 동북아시아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고, 한반도 38선에서 미소간의 절묘한 세력균형이 이루어져 버린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1,1980; 21991)>에서 한반도의 분단, 특히 북위38도선의 군사분계선은 소련과의 경쟁과 타협을 위해 미국이 그었다고 주장했습니다. 1945810일 자정께, 지도에 직접 38도선을 그은 장본인은 미국의 딘 러스크였던 사실까지 밝혔습니다.

 

한편 코시로 유키코는 미군의 오키나와 상류에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소련군의 만주와 한반도 진격에는 저항하지 않았던 일본의 책략이 한반도 분단의 근인(根因)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에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 또 하나의 국가(2004)>에서 코시로 유키코의 연구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수정했습니다. 그는 194588일 참전한 소련이 이튿날 함경북도 웅기에 상륙, 813일 청진으로 진격하자,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815일 항복한 것을 지적하면서, “일본이 만주와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하거나 신속하게 항복하면서, 소련을 한반도에 끌어들였다는 코시로 유키코의 주장을 인용했습니다.

 

 

이것이 브루스 커밍스(1985)가 시작하고 코시로 유키코(2004)가 보완한 한반도 분단의 기원에 대한 정설입니다. 이상한 점은 이 정설이 정립되는 데에 한국 사학자들의 기여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인 학자가 미국의 책임을 주장하고 일본인 학자가 일본의 책임을 주장했는데, 한국의 사학자들은 오히려 커밍스-코시로의 정설을 평가절하하는 모양새입니다.

 

예컨대 뉴라이트 역사학자 이주천(李柱天, 원광대)<월간조선(200611월호)>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커밍스와 코시로의 연구를 길게 인용하면서도, 결론은 다음과 같이 내립니다.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와 분단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전적으로 미국에 묻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은 전후대비전략의 일환으로 항복의 시기를 의도적으로 늦춤으로써 소련이 한반도에 개입할 소지를 만들었고, 소련은 북한 점령 직후 북한지역에 단독정권 수립을 추진함으로써 단순한 군사분계선으로 그칠 수 있었던 38선을 통치분계선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이주천은 (1) 한반도 분단을 주도한 미국의 책임(커밍스)을 부인할 수 없지만, (2) 소련의 한반도 개입의 소지를 만든 일본(코시로)(3) 분단을 고착화시킨 소련(이주천?)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지요. 미국의 책임을 경감하고, 일본의 책임은 가볍게 언급하면서, 소련의 책임을 강조하는 식입니다.

 

이런 책임 평가의 적실성은 별도로 하더라도, 이게 뉴라이트 사학자들의 기본 태도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반도 분단의 기원에 대한 커밍스-코시로의 정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일본과 미국의 책임은 줄이고, 더 무거운 책임을 소련에게 지우려고 하는 겁니다. (계속, jc, 20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