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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사진 에세이

[최승희 사진] 2. 세기의 특종

숙명여학교 졸업식 직후의 최승희 사진이 한 장 더 있습니다. 1926325<경성일보(3)>에 실린 사진입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수백 개의 매체가 수천 장 혹은 수만 장의 최승희 사진을 보도했겠지만, <경성일보>의 이 사진이 언론 매체에 보도된 최초의 최승희 사진입니다. 세기의 특종 사진이었던 셈이지요.

 

1926년 3월25일의 <경성일보(3면)>에 게재된 최승희의 사진. 언론에 보도된 최초의 최승희 사진이다.

 

그런데 이 특종 사진의 화질이 좋지 않습니다. 마치 급히 현상하다가 빛이 들어가는 바람에 흐려진 것처럼 보입니다. 1920년대의 신문사 사진기자라면 촬영뿐 아니라 현상과 인화에 인쇄용 제판까지 담당했던 전문가입니다. 그런데도 사진이 이렇게 허술하게 현상되었다면 필시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진이 실린 기사가 인터뷰 기사이므로 이 사진은 인터뷰 도중이나 전후에 촬영한 사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흐려진 사진을 그냥 게재했습니다. 대체할 다른 사진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인터뷰하면서 사진을 한 장밖에 찍지 못했다는 말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경성일보>가 최승희의 무용유학을 단독 보도한 것은 최승희의 무용 유학이 제안되고, 추진되고, 결정되는 과정에 <경성일보>의 테라다 토시오(寺田壽夫) 학예부장이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1926년 3월26일의 <매일신보(2면)>에 보도된 최승희 사진. 하루 전에 <경성일보>에 게재된 것과 같은 사진이다.

 

최승일은 1926321일 저녁 경성도서관에서 <경성일보>에 보도된 "조선 소녀를 제자로 받고 싶다"는 이시이 바쿠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다음날인 322일 아침 최승일은 테리다 학예부장을 찾아갔습니다. 이시이 바쿠의 경성 공연이 <경성일보>의 후원을 받았고, 그 소관부서가 학예부였기 때문에, 최승일은 그 최고 책임자를 찾아간 것입니다.

 

최승일은 이시이 바쿠의 인터뷰 기사를 언급하면서, 여동생 최승희를 이시이 바쿠의 제자로 보내고 싶은데, 이를 주선해 주도록 부탁했을 것입니다. 이시이 바쿠 인터뷰 기사를 직접 썼거나, 적어도 데스킹을 했을 테라다 부장은 이시이무용단의 조선인 제자 모집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최승일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최승일과 최승희를 소개하는 소개장까지 써주었습니다. 323일 공연이 끝난 뒤에 이시이 바쿠를 만나도록 약속도 잡아주었습니다.

 

1926년 3월23일 저녁7시에 이시이 바쿠 무용단의 공연이 열렸던 경성공회당.

 

최승희는 323일 오전에 숙명여학교 졸업식에 참석했고, 그날 저녁에는 오빠 최승일과 함께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10시에 최승희는 공회당 지하 식당에서 테라다 부장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이시이 바쿠가 숙소로 철수하면서 테라다 부장에게 인터뷰를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이시이 바쿠의 입문 승락이 난 것은 324일 아침이었고, 테라다 부장의 안내로 경성일보의 마츠오카 마사오(松岡正男) 사장의 집을 찾아가 도항 허가증을 얻어낸 것이 그날 점심, 그리고 부모님의 허락을 얻은 것이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1937년 4월1일자 <조선행정(1권4호)>에 "무희 최승희론"을 기고한 테라다 도시오

 

324일 저녁 최승희의 도쿄 유학이 확정되자 테라다 부장은 <경성일보>의 사진 기자를 불러서 최승희의 사진을 찍는 한편, 최승희 인터뷰 기사를 사진과 함께 다음날 조간신문에 내도록 지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기사는 빨리 준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진은 현상, 인화, 제판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서둘러 사진을 현상하다 보니까 빛이 들어가 버렸던 것이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사진을 한 장밖에 찍지 못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광으로 사진을 찍기에는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고, 플래시를 충전해가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테라다 부장의 호출을 받은 사진기자는 급히 한 장을 찍어서 신문사로 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장 뿐인 사진을 현상하다가 빛이 들어가 버린 것이지요.

 

926년 3월25일의 <경성일보(3면)>

 

따라서 이 사진은 최승희가 숙명여학교를 졸업한 다음날인 1926324일 저녁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흐려진 부분 때문에 옷차림을 세세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상의가 흰색 저고였던 것으로 보이네요. 이 사진이 선명하게 나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최승희가 여학교를 졸업한 뒤에 촬영한 첫 사진이었으니까요. (jc, 202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