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최승희 선생의 무용 유학 초기의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이 사진은 (1) 다카시마 유사부로(高嶋雄三郞)와 정병호 편집의 사진집 <세기의 미인무용가 최승희(1994, 46쪽)>와 (2) 정병호의 평전 <춤추는 최승희(1995, 31쪽)>, (3) 김찬정의 평전 <춤꾼 최승희(2003, 36쪽)>와 (4) 정수웅의 사진집 <최승희(2004, 16쪽)>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언제, 어디서’ 촬영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또 이 사진이 ‘왜’ 촬영됐는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각 문헌마다 설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1)은 “1926년 (최승희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한 달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습니다. 최승희는 1926년 3월25일 경성을 출발해 4월1일에 도쿄에 도착했으니, (1)의 설명대로라면 이 사진은 1926년 2월말이나 3월초에 경성에서 촬영된 사진이겠습니다.
(2)는 “최승희가 도쿄로 떠나기 전”에 찍은 “16살 때”의 사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자 정병호(1995, 23쪽)는 최승희의 생년월일이 1911년 11월24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는 나이로) 16세였다고 서술한 것은 1926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사진 설명은 “도쿄로 떠나기 전”이라고 했으나 이 사진의 상단에 기록된 “1926년 4월 도일즉시”라는 메모와 상충됩니다. 어떤 기록이 사실인지, 이 책만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3)은 이 사진이 “1926년 3월 이시이 바쿠 무용연구소로 갈 때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과 같은 시기에 촬영되었음을 명시했고, (2)와도 그리 다르지 않은 설명입니다. 그러나 (1), (2)와 마찬가지로, 이 사진의 촬영시기를 추정한 근거는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4)의 설명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시이바쿠 무용단 입단 직후의 최승희, 1926”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사진은 상단이 잘려 나갔기 때문에 (2)가 보여준 “도일 즉시”라는 메모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4)는 이 사진이 1926년 4월초 도쿄에서 촬영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네 문헌을 종합하면, 이 사진은 1926년 2-3월에 경성, 혹은 1926년 4월에 도쿄에서 찍은 것이겠습니다. 어느 서술이 맞을까요? 그 답은 뜻밖에도 7년 뒤에 출판된 여성잡지가 제시했습니다. 최승희가 <신여성(1933년 1월호, 67쪽)>에 기고한 “석정막과 나의 관계(67쪽)”라는 글에 이 사진이 실렸고, 사진 설명에는 “도쿄시대의 최승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 사진은 1926년 4월1일 최승희가 도쿄에 도착한 즉시 촬영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최승희가 도쿄에 도착한 다음날(4월2일, 금요일)이거나, 혹은 적어도 그 주말(3-4일)에 촬영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2)의 “1926년 4월 도일즉시”라는 메모입니다. 도일즉시(渡日卽時)란 ‘일본에 건너가자마자 바로’라는 뜻이니까요. 둘째는 (1), (2), (4)의 사진 상단 양쪽에 찍힌 테이프 자국이고, 셋째는 (1)~(4)의 사진에 최승희의 가슴께에 쓰인 “승희(承喜)”라는 이름입니다.
테이프 자국이 난 것은 이 사진을 다른 문서나 물건에 붙였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무용연구소의 학적부 혹은 단원 명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신입단원 최승희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와 본적, 가족관계와 학력사항 등을 적은 명부를 작성해야 했을 테니까요. 학적부나 단원명부에 사진을 첨부하는 것은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혹은 이 사진이 무용연구소의 게시판에 마련된 단원 명단에 붙여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신입단원의 사진을 이름과 함께 게시해서 다른 단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명단이 있었다면, 최승희도 다른 단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연관시켜 쉽게 익힐 수 있었겠습니다.
한편 <신여성>의 사진에는 최승희의 가슴에 이름이 쓰여 있지 않습니다. 학적부나 단원명부에 붙여진 사진 말고도, 최승희가 따로 보관한 같은 사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1929년 유학을 마치고 경성에 돌아온 최승희는, 보관하고 있던 이 사진을 잡지사에 제공하면서 “도쿄시절의 사진”이라고 설명했고, <신여성>은 그렇게 인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jc, 2023/3/25)
'최승희 사진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崔承喜の写真] 2.世紀のスクープ (0) | 2023.04.18 |
---|---|
[최승희 사진] 2. 세기의 특종 (0) | 2023.04.18 |
[崔承喜の写真] 1.渡日即時 (0) | 2023.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