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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정세화 선생이 고베중앙도서관에서 찾아내신 1929년 3월28일자 <고베신문> 기사를 번역한 것이다. 정홍영 선생의 저서 <가극 도시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의 부록편에도 실려 있는 이 기사는 조선인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은 후쿠치야마선 철도개수공사 중에 발생한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를 보도한 것이다.
<고베신문, 1929년 3월28일, 한신판>
(제목과 소제목) “이건 또 얼마나 횡포한 일인가!/ 다이너마이트를 모닥불에 말리다가/ 2명이 비참하게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다/ 가와베군 철도 터널 공사장의 참사”
(기사 본문-문단 번호는 필자가 붙인 것) (1) “철도성선(=오늘날의 JR) 후쿠치야마선의 개수공사에 종사중인 조선 경상남도 출신 윤길문(尹吉文, 21) 동 윤일선(尹日善, 25) 오이근(吳伊根, 25) 여시선(余時善, 19) 오이목(吳伊目)의 다섯 명이, 다른 다수의 조선인 인부들과 함께 가와베군 니시타니무라 기리하타 나가오산 제6호 터널 입구(간자키 기점 15리 지점)에서 공사 중,
(2) “이 공사에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가 결빙되고 있으므로 모닥불로 이것을 녹이면서 그 부근에 이들 조선인 토목노동자 남녀들이 모여 몸을 녹이고 있는 중, 1개의 다이너마이트가 10개로 인화되어 아연 대음향과 함께 폭발했는데,
(3) “윤길문(21)은 장부가 노출되어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으로 즉사했고, 오이목(25)은 여러 간을 튕겨 나갔고, 경상남도 태생 토공 윤일선(25)은 대퇴부를 비롯해 그 밖의 심한 부상을 당했고, 그의 아내 여시선(19)은 안면에 부상을 당했으며, 오이근은 왼쪽 다리를 뿌리부터 절단 당했고, 그 외 여러 명의 부상자를 냈다.
(4) “이케다 마을의 회생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도중에 오이근은 마침내 절명했다. 급보에 의해 관할 다카라즈카서에서 경관을 현장으로 출동시켜 관계자를 소환 조사 중이다.”
이 기사는 전체가 4백자도 채 안 되는 짧은 기사이지만 6하 원칙에 충실해서 폭발사고 상황을 짐작하기에 충분하고, 그렇게 상상되는 상황이 매우 끔찍한 것도 사실이다.
우선 이 기사에는 피해자 5명의 이름과 나이가 나타난다. 위의 문단(1)에는 이름과 나이만 나오지만, 문단(3)에는 그들이 각각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도 서술되어 있다. 특히 문단(3)은 들여쓰기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다른 기사나 보고서를 인용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문단(1)은 기자가 직접 취재해 작성한 것이지만 문단(3)은 병원 보고서를 입수해 인용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문단(1)과 문단(3)의 명단은 거의 일치한다. 피해자 윤길문(21)과 윤일선(25)과 여시선(19)의 이름과 나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문단 사이에 약간의 차이도 있다. 문단(1)에서는 오이근(25)이 먼저 등장하고 나이가 명시된 반면 나중에 등장하는 오이목의 나이가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문단(3)에서는 오이목(25)이 나이와 함께 먼저 서술되었고 나중에 서술된 오이근의 나이는 누락되었다.
이 사고의 사망자는 윤길문(3문단)과 오이근(4문단)이고,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에 이름이 새겨진 사람도 이 두 사람이다. 오이근과 오이목의 나이가 엇갈린 것은 두 사람 모두 사고당시 25세였거나, 혹은 보도과정에서 두 사람의 나이가 혼동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문단(3)이 인용문이라는 점, 그리고 문단(1)의 오이근 언급과 문단(4)의 오이근 사망 보도가 같은 기자의 보도인 것을 고려하면 오이근의 나이가 25세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론적으로 이 기사는 5인의 피해자가 모두 경상남도 출신이라는 점은 일관되게 보도했고, 이들의 이름과 가족관계 설명으로 보아 윤길문과 윤일선과 여시선이 한 가족이라는 점, 그리고 오이근과 오이목도 형제관계이라는 점도 추측할 수 있다. (jc, 20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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