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 선생의 강연제목에 “지정학적 상상력”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학문 이름에 “상상력”을 사용한 것은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1959)>이 그 기원입니다. 밀즈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개인 경험을 넘어선, 사회 속 관계에 대한 인식”이라고 정의했지요. 또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특징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따라서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사회적 관계의 특징을 이해하고 그 관계 속의 개인과 단체의 상호작용의 특징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지정학적 상상력도 비슷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국가들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지정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정학적 상상력은 지리적 위치와 관련하여 국가 관계의 특징과 그 상호작용의 특징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김동기 선생이 서술한 초기 지정학자들의 주장은 지정학적 상상력의 결과입니다. 씨파워와 랜드파워, 하트랜드와 림랜드의 구분도 각국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지리적 위치에 관련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연구됩니다.
이들 말고도 다른 학자들이 이런저런 주장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이 잊혀 지고 이들의 이론이 지금도 탐구, 실천되는 것은, 이들의 지정학적 상상력이 정확했기 때문이겠지요. 즉, 국가관계의 특징과 그 상호작용의 특징을 사실과 부합되게 이해했다는 말이겠습니다.
초기 지정학자들과 현대 지정학자들의 주장에 공통되는 국가관계와 그 상호작용의 특징은 “힘”입니다. 힘이 있어야 게임주체가 될 수 있고, 힘의 균형이 이뤄질 때까지 자신의 힘을 활용한다는 것이지요. 이때의 힘이란 경제력과 외교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사력입니다. 강대국의 지정학적 상호작용은 흔히 통상과 외교,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전쟁으로 나타납니다.
지정학적 상상력의 이 같은 전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판하게 되고 실패하게 됩니다. 독일과 일본의 패전이 그런 오판의 결과지요. 강대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퇴당하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했던 것은 상대 강국의 의도를 오판했거나 약소국의 독립의지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으로 평가됩니다.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은 경우가 좀 다를 수 있기는 합니다. 미국의 베트남 패퇴는 중국의 동차이나해와 인도양 진출을 저지할 교두보를 잃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실패임에 분명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미소가 상대편의 영향을 저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현상유지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반드시 실패라고 할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강대국의 지정학적 실패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약소국도 지정학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고, 활용할 수 있으며, 강대국의 지정학적 기획을 실패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약소국의 지정학적 상상력이란 강대국의 지정학적 기획을 정확히 꿰뚫어보면서 그 허점을 노리거나, 충돌하는 강대국의 사이에서 중간자로 기능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경우일 뿐이겠습니다.
한반도가 분단된 것은 미일의 탁월한 지정학적 상상력과 남북한의 멍청함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은 패전을 앞두고도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소련을 대립시켜야 향후 일본의 입지가 생기며, 한반도에서 미소를 대립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습니다.
이 인식을 실천하기 위해 수만의 병력과 수십만의 민간인들의 목숨을 추가적으로 희생시켜가면서 항복 선언을 지연했고, 그 때문에 동아시아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가 분할되었던 것이지요.
반면에 이승만과 김일성은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기획을 전혀 모른 채 권력투쟁에 골몰하다가 결국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했습니다. 지정학적 상상력이 없으면, 다른 나라의 졸개 노릇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3백만의 인명을 잃어가며 입증한 것이지요. (jc,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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