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 코레야(千田是也)는 도쿄 대지진 다음날 밤의 경험을 직접 증언한 적도 있다. 2016년 9월3일 일본 NHK방송의 교육방송인 ETV의 특집 프로그램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비극은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출연한 센다 코레야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센다 코레야는 1994년에 사망했으므로, 아마도 그의 생전에 진행된 인터뷰를 편집한 영상이었을 것이다.
“나의 예명 ‘센다 코레야’의 유래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한다. 이 예명은 센다가야를 따서 ‘센다’, 그리고 조선인, 즉 코리안을 따라 ‘코레야’라고 지은 이름이다. 내가 센다가야에서 조선인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할 뻔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대지진 이틀째 되는 날 밤으로 기억한다.
“마을마다 불길이 밤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고, 이따금씩 휘발유와 화약이 터지는 섬뜩한 소리가 들리고, 여진이 반복되고, 들것과 짐수레에 실린 부상자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는,
평소 원한을 품은 조선인들이 대거 일본인을 습격한다거나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우물에 독을 푼다거나, 길거리에서 피난민에게 독이 든 만주를 나눠준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유언비어가 얼마나 사실인 것처럼 들리는 지 모른다.
또 다른 소식에 따르면 군대가 현재 다마가와 강변에 산개해 카나가와 방면에서 북상 중인 강력한 불령선인 집단과 교전 중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어 2층의 장롱 밑바닥에서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단도를 꺼내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도록 화장실 쪽 창문 뒤에 숨겨두고, 등산용 스틱을 들고 맞은편 집 아들과 함께 집 앞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냥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쓸모없을 것 같아서 적진 정찰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센다가야 역에서 가까운 선로 둑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조선인이다, 조선인이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당시에는 아직 황무지였던 메이지 신궁의 외원(外苑) 도로의 야산 사이로 여러 개의 등불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불령선인’이 이쪽으로 쫓아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협공을 하기 위해서 그쪽으로 달려가는데, 갑자기 허리 부분을 쾅 하고 얻어맞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구름같이 덩치가 큰 남자가 스틱을 휘두르며 ‘이타아, 이타아!’라고 외치고 있었다.
“등산용 지팡이를 들고 뒷걸음질 치면서 ‘아니야! 아니라니까’라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상대방은 듣지도 않고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며 ‘센징이다, 센징이다아!’라고 계속 소리쳤다.
“그러는 사이 등불들이 모여들어 우리를 빙 둘러 에워쌌다. 아우성을 치던 큰 남자는 센다가야 역 앞에 사는 백계 러시아인 모직 양복지(羅紗) 판매원이었다. 그쪽은 조선인이 아니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곤봉인지, 목검인지, 죽창인지, 죽도인지, 도끼인지, 온갖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패거리들이 "망할 놈, 자백하라" "못난 놈, 국적을 말하라"고 나를 몰아붙이는 것이다. “아니요, 일본인입니다. 바로 저 앞에 살고 있는 이토 쿠니오입니다. 와세다 학생입니다”라고 학생증을 보여주어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도끼를 내 머리 위에 겨누면서 ‘아이우에오’를 발음해 보라느니, ‘교육칙어’를 암송해 보라는 것이었다. 뭐, 이 두 가지는 그럭저럭 잘해서 넘겼지만, 역대 천황의 이름을 외워보라는 것은 곤란했다. 어차피 이 패거리들도 잘 모르겠지, 하고서 용기를 내어 최대한 천천히, ‘진무, 스이제이, 안네, 이토쿠, 코쇼, 코안, 코레이, 카이카, 수진, 수이닌, 케코, 세이무, 츄아이....’하고 외어나갔다.
“이제 더 이상 뭐라고 둘러대기 어렵게 되었을 때, 고맙게도 누군가가 뒤에서, ‘뭐야, 이토 씨의 도련님이 아닌가, 괜찮아요. 이 사람이라면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동네 술집의 젊은 친구였다. 그러자 청년단 복장을 한 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며 ‘그래, 이토 군이야’라고 말했다. 이 사람은 센다가야 교회의 주일학교에 다닐 때의 친구였다.
“내 경우에는 이렇게 어이없게나마 목숨을 건졌으니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 조선인 소동에서 수많은 무고한 조선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단지 조선인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원래 일본인과 조선인은 큰 차이가 없으니 그 자리에서 조선인으로 오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일본인도 죽거나 다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치의 유대인 사냥과 마찬가지로 지진으로 불타고 헐벗은 대중이 지배층에 대해 가진 불만과 분노를 민족적 적대감으로 바꿔치기하려는 정부와 군부의 모략이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일방적으로 피해자였던 것처럼 보이는 사건으로 결말이 났지만, 사실 나 자신도 자경단 흉내를 내며 가해자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조선 문제는 저쪽 입장에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일본인 센다 코레야가 조선인으로 오해되어 일본인들에 의해 죽을 뻔했던 것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두 가지의 아이러니가 더 개입되어 있다.
우선 예술가 집안에서 자라고 명문 도쿄일중과 와세다 교육을 받은 센다 지성인조차 “조선인들이 일본인을 습격”한다거나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우물에 독을 푼다”거나, “이들이 길거리에서 피난민에게 독이 든 만주를 나눠 준다”는 등의 유언비어에 선동되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지성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뜻이다.
센다 코레야는 이러한 유언비어가 일본 정부와 군부의 모략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아마도 두 가지 정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째는 유언비어로 모함되었던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가 모두 정부와 군부의 통제대상이었다. 상황 통제의 책임을 지고 있던 군부(계엄사령부)는 6일이나 지나서 그 같은 유언비어가 사실이 아니라고 발표했는데, 이때는 이미 엄청난 희생이 발생하고 난 뒤였다.
둘째는 이 같은 유언비어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언론이었으나, 당시 언론은 정부와 군부의 통제 아래 있었다. 언론이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의 희생을 보도한 것은 두 달이나 지난 10월 하순이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일본 정부와 군부가 유언비어를 통해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를 통제하고 무력화시키려고 했으나, 센다 코레아는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자신의 필명을 “센다가야의 조선인”으로 정해 평생 사용했다.
그는 조선인을 "조선인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을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센다 코레아’로 바꾸어 평생 사용하는 형태로 실천했다. 이는 곧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는 또 일제의 사회주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1927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의 라인하르트 연극학교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독일 공산당에 입당했고, 쿠니자키 테이도(国崎定洞, 1894-1937)와 함께 독일공산당 일본어부를 설립, 코바야시 타키지(小林多喜二, 1903-1933)의 <1928년 3월15일> 등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홋카이도 오타루를 배경으로 한 <1928년 3월15일>은 일제 관헌이 공산당원을 대거 검거해 탄압했던 사건을 고발한 작품이다. 그는 또 독일공산당 일본어부를 기반으로 비당원도 흡수하여 <베를린 반제그룹>을 결성했는데, 이는 반파시즘, 반전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단체였다.
센다 코레야는 1931년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도 신쓰키지(新築地) 극단에 참가해 연출과 연기의 양면에서 활약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연극의 리더가 되었고, 이같은 활동으로 1940년 치안유지법으로 검거되어 2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관동대지진은 자연재해였으므로 인명과 재산 손실이 불가피했다. 일본 국민과 정부는 물론 재일동포를 포함한 외국인 체류자들도 협력해 극복할 수 있었을 일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자연재해를 조선인 학살과 사회주의/무정부주의 탄압의 수단으로 악용함으로써, 세계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부를 드러냈다. 센다 코레야가 그 산 증인이 된 것이다. (jc, 202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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