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2025보성

[은하수2025보성] 16. 삼의당과 대한다원

조정희 2025. 6. 3. 18:00

3일째이자 마지막날 아침, 일행은 삼의당(三宜堂)을 방문했다. 첫 날 종일 내린 비로 마을을 휘돌아가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시끄러울 만큼 불었고, 일행은 조심스레 징검다리를 건너 일림산 기슭의 삼의당에 도착했다.

 

 

삼의당은 봉강 정해룡 선생의 조부 정각수 선생이 지은 고택이다. 그 집에 삼의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자손들에게 내린 3가지 교훈을 기억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세 교훈은 부정부패를 멀리할 것,” “선영을 지킬 것,” 그리고 후세의 교육에 힘쓸 것이라고 한다.

 

 

정각수 선생이 후손에게 이 같은 교훈을 내린 것은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과거를 위해 한양에 올라갔으나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을 목격했다. 더러운 세상에 발을 담그기 싫었던 그는 과거를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왔고, 횡행하는 부정부패에 휘말리지 말고, 조상의 땅을 지키면서, 나중을 위해 후손들을 교육시킬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이렇게 보성 봉강리에는 기억할 만한 집이 세 채가 있게 되었다. 거북정과 삼의당, 그리고 회소헌이다. 그 각각의 집에는 교훈이 스며있다. 거북정에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 교훈을 지키기 위한 방법론이 이미 삼의당이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부정부패를 경계하고, 의를 지킨 조상의 본을 받을 것, 그리고 시대의 교양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웃음이 머물 수 있는 회소헌이 실현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삼의당과 정각수 선생 부부의 묘소를 방문하고 나서 일행은 귀갓길에 올랐는데, 예정에 없던 행선지가 한 곳이 더 생겼다. 보성의 명물 녹차 밭을 구경하자는 것이었다. 한번이라도 대한다원에 가본 사람은 다들 찬성했다.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냥 따라 나설 뿐이다.

 

 

45도가 넘어 보이는 산등성이는 온통 녹차 밭이었다. 다양한 산책길을 마련해 놓아서 사정에 맞게 녹차밭 사이로 거닐 수 있게 해 놓았다. 다원쉼터에서 파는 녹차아이스크림도 명물이다. 시원하고 달달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푸른 색깔과 향긋한 녹차향이 참 좋았다. 우리는 작은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면서 녹차 밭 사이를 산책했다. 신선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녹차 밭 이름은 <대한 다원>인데, 이 녹차밭이 처음 조성된 것이 1939년이라고 했다. 으잉? 일제강점기에 녹차 밭을 조성하면서 대한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었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울에 돌아온 후에 약간의 조사를 해 봤지만,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각종 사전이나 안내문에도 대한다원의 기원을 1939년이라고 적어놓았다. 그러나 한 일본어 논문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보성군에 녹차밭을 조성한 것은 일본인이었음이 밝혀졌다.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의 가부라키 나루히토(鏑木徳仁) 소장이 <경성화학주식회사>에게 차 생산을 권유했고, <경성화학>이 보성군에 30헥타르의 다원을 조성했던 것이다.

 

 

<경성화학>은 일본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 본사를 둔 <칸사이페이트 주식회사(尼崎関西ペイント株式会社)>의 자회사였다. <경성화학>은 보성에 자생적으로 조성된 차밭을 정리하는 한편, 1941년에는 인도산 베니호마레(Benihomare) 차나무를 새로 심었는데, 차 생산이 시작되기 전에 일본이 패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철수 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사회적 혼란기에 일본인이 조성했던 다원은 황폐되었으나, 1957<대한다업주식회사(회상 장영섭)>가 설립되어 봉산리 일대에 녹차밭을 조성하는 한편 삼나무, 편백나무, 대나무 등을 심으면서, 170만평에 달하는 보성지역 최대의 녹차밭 <대한다원>이 조성되었다.

 

, 지금의 <대한다원>은 한국회사 <대한다업주식회사(1957)>이 조성한 것이며, 일본기업 <칸사이페인트주식회사)>가 조성했던 30헥타르(9만평)의 녹차밭보다 20배나 더 넓다.

 

 

그런데 페인트 회사가 어떻게 녹차사업에 뛰어들었는지가 또 다른 의문이다. 아마가사키에는 아직도 <간사이페인트주식회사>가 영업하고 있는데, 시간이 되면 이 회사의 초기 역사라도 한번 조사해 보고 싶다. (jc, 202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