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2025보성] 8. 채동선 생가
벌교 방문은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시작해서 현부자/소화/김범우의 집을 거쳐 <채동선 생가>로 이어졌다. 박한용 선생으로부터 채동선 생가 해설을 지시받았는데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잖아도 할 말이 있었는데 최승희 선생의 벌교공연(1931년)을 조사하다가 이 공연이 채동선가(家)과 깊이 관련된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서술한 취재기도 탈고했었기 때문이다.

<채동선 생가>는 부친 채중현(蔡重鉉, 1876-1947) 선생보다 아들이 더 유명해지는 바람에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부친 채중현 선생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그는 벌교의 대지주이자 사업가, 그리고 벌교를 위한 각종 사회,교육,문화 사업에도 열심이었던 덕망가였다.
채중현 선생의 공식 직함은 금융조합장과 남선무역주식회사장이었다. 일제강점기 다른 지역에서는 금융조합이 대개 일본인에 의해 운영되었지만, 벌교에서는 채중현 선생이 경영했다는 점만 보아도 이곳 조선인들의 재력과 추진력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남선무역주식회사는 일본과의 무역으로 시작해서 벌교-여수, 벌교-부산을 연결하는 선박업, 농기구와 살림기구를 생산하는 주물공장도 운영했던 회사로 적어도 초기에는 높은 수익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채중현 선생은 지주이자 사업가로서의 재력을 기반으로 조선인을 위한 2개의 학교와 유치원을 설립하는 등, 벌교의 많은 공공사업과 문화사업을 주도했는데, 최승희의 조선무용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온 내게는 그가 <벌교극장(1930년)>을 지은 분으로 특별히 각인되어 있다.
이 극장은 경성의 <단성사(1907년)>, 인천의 <애관(1920년)>, 목포의 <목포극장(1926년)>에 이어 조선인이 건립한 네 번째 극장이다. 전라도의 대도시 광주의 <광주극장(1935년)>보다 5년 이르게 건립된 극장이고, 수용인원이 1천석으로 경성의 <단성사>와 같은 규모였다.

<벌교극장>은 1930년 12월6일 낙성됐는데, 당시의 신문들은 이 극장이 채중현 선생의 사재출연으로 설립되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어와 일본어 신문들은 공통적으로, 벌교에 공,사 모임을 위한 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채중현씨가 사재 4천원을 기부해 <벌교구락부>의 회관으로 <벌교극장>을 건축했다고 보도했다. 1930년의 4천원은 오늘날의 약 2억원에 상당한다.
나는 채중현 선생이 <벌교극장>을 건립한 개인적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1929년 9월초 그의 아들 채동선 선생이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것이 실마리였다. 귀국 직후 채동선 선생은 바이올린 독주회와 작곡발표회를 열고, 이화여전의 교수로 재직하는 등, 주로 경성에서 활동했지만, 채중현 선생은 아들이 고향에서도 연주회를 열 수 있는 극장을 지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채중현 선생이 아들의 귀국 직후 <벌교극장>을 건립한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았다.

1930년 12월6일의 <벌교극장> 낙성식 때에는 명창 이화중선-이중선 남매의 공연이 열렸는데, 일 년 후인 1931년 12월6일에는 최승희 무용공연이 <벌교극장>에서 유치됐다. 이는 <벌교극장> 개관 1주년 기념행사였던 것이다.
나는 이 공연이 어떻게 성사되었는지 궁금해서 채동선과 최승희의 일가를 조사했다. 채동선은 최승희 선생은 오빠 최승일과 둘 다 지방 출신의 동년배였고, 같은 시기에 경성과 도쿄에서 유학했다. 두 사람 모두 삼일운동에 참가했다가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경험을 공유했다.

또 최승희의 남편 안막은 채동선의 와세다 대학 후배였고, 1929년의 채동선 귀국 독주회에 뒤이어 열린 와세다 동문회 회식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것이다. 더구나 최승희는 1930년 4월11일의 <신춘음악무용의밤> 행사에 채동선과 나란히 출연해 함께 공연한 바 있었다.

이같은 두 가족 사이의 관계와 교류로 미루어 <벌교극장> 개관1주년 기념공연은 최중현 선생이 제안한 무용공연 기획을 채동선 선생이 최승희 선생의 가족에게 전달했고, 이를 최승희 선생 가족이 수락함으로써 성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해방 후 폐관된 <벌교극장(1930)> 터에는 <현대극장(1961)>이 세워졌으나 지금은 그나마 폐관되었다. 지금은 벌교에 <채동선 음악당(2007)>이 건립되었는데, 여기에는 약 250석의 극장도 마련되었지만, 이 시설은 채동선 기념관 혹은 박물관에 가깝다. <채동선 음악당>은 채중현 선생이 설립했던 <벌교극장> 터에서 북쪽으로 불과 5백미터가 떨어져 있다. (jc, 2025/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