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2025보성] 7. 태백산맥 문학관
이번 은하수 소풍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곳이 태백산맥 문학관이다. 사실 실망은 방문 전부터 하고 있었다. 서너 번의 과거 벌교 취재에서도 이곳은 딱 한 번 와보았을 뿐이다. 건물은 돈을 많이 들여 그럴듯하게 지었지만, 전시물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옥상에서의 전망이나 3층의 전망대도 마찬가지였다. 전망대의 유리는 너무 흐렸고, 옥상에서도 벌교 시내가 그다지 잘 조망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쯤은 방문할 필요가 있고, 전시물에 실망할수록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의 메시지를 잘 숙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품 <태백산맥>의 소개와 분석은 박한용 선생께서 미리 올려주신 발제문에 잘 나타나 있다.
반면 현부자집이나 소화의 초가집, 그리고 김범우의 고택을 방문한 것은 의미가 있다. 최승희 공연의 취재로 여러 번 벌교를 방문했지만, 태백산맥문학관에 실망한 나머지 다른 관련 명소들은 전혀 가보지 않았는데, 차라리 이 곳들이 생각꺼리를 더 주는 편이었다.

벌교의 현부자집은 회천의 거북정과 비교하니까 오히려 공부가 되었다. 현부자집은 대문부터 누각식이고 솟을대문이어서 위압적이고, 바깥뜰은 일본식 정원이어서, 나는 더 이상 위로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모습은 일본에서도 자주 봤기 때문이었다.

현부자집의 설명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 집은 실제인물 박사윤(朴士胤)이 거주하던 곳이다. 그는 민족음악가 채동선의 부친 채중현(蔡重鉉) 선생과 쌍벽을 이루던 벌교의 부호였다.

박사윤과 채중현은 일제강점 아래서 민립대학 설립운동에 참여하고, 벌교에 금융조합을 만들고, 전기를 끌어들이고, 학교를 세우는 일이 협력하기도 했지만, 사업과 사회활동에서 경쟁하던 라이벌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경쟁이 지나쳐서 박사윤이 금융조합과 남선무역주식회사의 비리행위로 채중현을 고발하기도 했는데, 채중현은 경찰의 조사는 받았지만 검찰에 의해 불기소되었던 바가 있었다. 채중현의 고택은 채동선의 생가로 정비되었고, 박사윤의 고택은 <태백산맥> 덕분에 현부자집으로 정비되어서, 벌교의 두 부호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 셈이다.

김범우의 집은 수리 중이었다. 낡은 대문과 건물이 새로운 목재 건물로 대체되고 있었는데, 아직 완공된 것 같지는 않았다. <태백산맥>에서는 이 집이 김범준과 김범우의 부친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졌고, 김사용은 후덕한 지주로 많은 사람들의 인심을 사서 인민재판에 끌려가서도 살아날 수 있었던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나는 최승희 벌교공연을 성사시켰던 채중현 선생을 조사하면서, 채중현, 박사윤보다 연장이면서 큰 기부를 자주했던 최재학(崔在鶴) 선생이 소설 속 김범우의 부친 김사용의 모델로 추정했다. 그는 민립대학 발기인으로 참가하면서 김회산(金會山) 여사와 함께 1천원을 기부했고, 그 다음으로 많은 기부를 한 사람은 9백원을 기부한 채중현과 박사윤이었다.

그러나 김범우의 집 설명문에는 이 집이 원래 “김씨” 문중의 집이라고 서술했으므로, 최재학이 이 집의 주인일 수는 없었다. 큰 손 기부자 “김씨”로는 김회산 여사가 있었지만, 그녀는 여성으로 강도에게 살해당한 서도현(徐道鉉)의 부인이므로, 설명문의 김씨일 수 없었다.

김범우의 집 뜰에서 박한용 선생이 즉석 강연을 해 주셨다. 해방 직전, 일부 조선인들이 미국군, 영국군과 협력하면서 국내 진격을 준비하고 있던 3갈래의 흐름에 대한 설명이었다. 일제 말기의 독립운동 흐름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했던 내게도 이 내용은 새로웠고, 작품을 추가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즉, 미정보국 OSS근무경력이 있던 김범우가 어째서 미국에 대해 실망을 넘어 적대감까지 가지게 되었는지가 완전히 이해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박한용 선생은, 이 분야가 전공분야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식의 범위가 넓으면서도 깊을 뿐 아니라, 언제든지 가장 효과적이고 요약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어? 이 분은 천재이자 달인인데?”하는 느낌을 받았던 내 첫 인상은 이번에도 증명된 셈이었다. (jc, 2025/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