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1931벌교

[최승희1931벌교공연] 10. 부정행위

조정희 2025. 5. 13. 11:06

지주이자 사업가였던 채중현도 부정행위 혐의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1924512일자 <시대일보(4)>남선무역주식회사에서는 사장 채중현씨의 부정행위가 지난달(=4) 28일 정기총회 석상에서 폭로되어 일장 분규가 일어났고, “조사역 3인을 선거하여 일체를 조사키로 한 바 당선된 조사역들은 장부와 기타 증거조사를 충분히 완료하고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하여 조사의 전말을 보고키로했다고 보도했다.

 

 

한 달 후인 1924621일자 <동아일보(3)>채중현은 전남경찰부에서 출장한 경찰관에게 취조를 마치고 지난 17일에 순천지청 검사국에 압송되었다고 전하고, 채중현의 혐의는 회사의 물건을 자의로 매매한 것과 입체금(立替金)에 대하여 중역의 결의도 없이 높은 이자를 붙여 찾아온 것이며, 그밖에도 벌교 근검조합장으로 서기의 월급과 상여금을 지불하였다 하나 받은 사람이 없는 것과 조합에 탈퇴하는 조합원에게 대하여 어떠한 사람은 본금만 지출하고 어떠한 사람은 이자금까지 지출한 등의 혐의도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1924626일자 <조선일보(3)>는 추가취재를 통해 회사의 물건을 자의로 매매한 건자기의 벼() 4백석을 회사에 매도하고 계약까지 성립한 후 회사 창고에 두었다가 여러 달 만에 일반 중역의 동의도 없이 자기의 임의로 끌어내어 다른 데 팔았다는 것이라고 특정했고, “조합원을 불공평하게 대우한 건사원들에게 꾸어주었던 금전을 일부오전으로 칠전까지의 이자를 받아서 자기가 사장이라는 직권으로 부당이익을 취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급과 상여금을 지불하였다고 하지만 받은 사람이 없는 건이란 “1926년 박사윤(朴士胤)씨가 전무 취체로 있을 때에 수개월 결근이 되어서 (월급을) 받을 수 없다고 받지 아니한 박전무의 수당 백여원을 자기가 무리하게 취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조선일보> 기사는 채중현씨는 재산과 명예가 많은 이로 이와 같은 행위가 있다 함은 누구나 한번 놀랄만하다고 금번 조사 끝에 일반의 비난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채중현 부정행위 사건에 대해 특히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쏟아냈는데, 1924628일자 <조선일보(3)>전남 순천군 벌교포 근검조합장이요 남선무역주식회사장 채중현씨의 부정행사로 전남 경찰부 근무 이채순(李采順) 경부 외 두 경관이 출장하여 십여 일을 검사한 결과 여러 가지 부정행위가 폭로되었다는데 지난 17일에 전기 채씨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 검사국으로 압송되었다면서 여러 가지 부정한 사실이 폭로되었으므로 일반은 채씨가 스스로 그와 같은 비루한 일을 감행한 것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고 분개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1924722일의 <조선일보(4)>조합장 채중현씨로서 빈약한 조합원의 고혈을 그와 같이 무리하게 착취하였다함은 누구나 한번 놀랠만한 일이라고 비난했고, “(채중현이) 전일의 허물을 깨닫지 아니하고 자기의 어떤 권리와 야심만으로만 계속함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채중현이 이러한 혐의에 대해 기소되거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채중현이 근검조합의 부정행위로 경찰의 조사를 받기는 했으나,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거나 법원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투옥되었다는 기사는 발견되지 않았다.

 

더구나 192562일의 <조선신문(1)>은 광주지법 보성출장소 이름으로 낸 법인등기공고에서 “(명칭을) 벌교금융조합으로 변경한 것과 조합장 채중현의 임기가 만료된 후 1925411일자로 재선임되었기에 1925513일자로 이를 등기한다는 공지를 보도했다. 즉 검찰 조사는 받았지만 벌교금융조합에 대한 부정행위 혐의가 검사에 의해 법원에 기소되기는커녕, 조합원들로부터 재신임을 받고 재선되어 조합장으로서의 임기를 연장하게 됐던 것이다.

 

 

남선무역주식회사에 관련된 혐의들도 기소되었거나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192616일자 <조선신문(5)>에는 채중현이 신청한 근하신년 축하광고가 실렸는데, 이 광고문에 명시된 채중현의 직함이 벌교포금융조합장남선무역주식회사장이었다. 부정행위 혐의로 조사를 받기 전과 조합과 회사에서의 지위에 변동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 뜻밖인 것은 채중현이 금융조합과 남선무역주식회사의 경영상의 비리혐의로 수사가 시작되자 수백 명의 벌교 주민들이 채중현의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점이다.

 

1924624일자 <조선시보>덕망가이자 자산가로서 벌교의 제1인자인 채중현씨가 이번 사건에 대해 일본인과 조선인 모두로부터 깊은 유감을 느끼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해 일본인과 조선인측 모두로부터 각통에서 수백 명이 연명한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전하고 이는 그가 평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공헌한 바가 다대하고, 시민들이 항상 감사하고 있으며, 장래에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시보>일본인과 조선인이 이처럼 행동에 나선 것을 보면 채중현씨의 평소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는데, 탄원서의 기사는 일본어 신문 <조선시보>에만 게재됐고, <매일신보><동아일보>, <조선일보><시대일보> 등의 조선어 신문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채중현을 상대로 제기된 민사 소송도 있었다. 1925118일자 <동아일보(3)>벌교포 마동리 양경수(楊敬洙, 26)는 변호사 리승우(李勝宇), 서광설(徐光卨), 조주영(趙柱泳) 3씨를 대리인으로 하여 동면 벌교리 채중현(蔡重鉉)씨와 식산은행(殖産銀行) 지점을 상대로 7년 전에 판 토지 4백여두락(현시가 5만원)의 반환청구소송을 광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소송 내용은 양경수가 광주농공은행 벌교지점(현 식산은행)에 저당된 토지 4백두락을 정사년(=1918) 1월경에 전기 채중현씨에게 팔고 그 당시 이전수속까지 하였는데, “7년 후인 금번에 양경수의 친척되는 일본 모대학 법과졸업생 김영돈(金永暾)의 다년 연구로 그의 친우 전기 세 변호사와 연락하여 양경수를 시켜 전기 토지는 미성년 때에 헐값으로 매매하였다는 조건으로 그와 같이 소송을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사는 또 원고 양경수는 부호 양시화(楊時和)의 양손(養孫)으로 그의 조부와 양부 양우석(楊禹錫)씨가 거금 10년 전에 연이어 사망하였음을 따라 수십만원의 재산을 상속받은 후에 영리를 목적하고 합자무흥상회(合資貿興商會)를 설립하여 경영하여 오던 바, 그 후에 시세의 폭락으로 비운을 당한바 있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19251110, 5)>는 또 양경수가 양부 양우석(楊禹錫)씨의 토지 수천두락을 상속하여 ... 재산 전부를 탕진하던 중 19181월경에 논 4백 두락을 현금 218백원에 채중현씨에게 팔아 소유권 이전까지 되었는바, 금년 5월 중순에, 토지를 자기가 미성년 때에 팔았으니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여, 토지반환청구소송을 광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고 재차 보도하면서 양경수가 채중현씨의 토지 소작인에게 금년부터는 자기가 소작료를 받을 터이니 지주 채중현씨에게 소작료를 납부하지 말라고 선동하고 있으며 이에 응하여 채중현씨는 소작료를 그에게 절대로 주지 말라 함으로 일반 소작인들은 매우 곤경에 처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민사소송에서도 채중현이 패소한 것 같지는 않으며, 오히려 언론의 왜곡보도로 채중현이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 보도 두 달 후인 1926111일의 <동아일보(4)>광양, 벌교, 순천의 3기자단 주최로 전남동부 기자대회 창립대회가 순천 노동학원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대회의 의결 사항 중에는 “(<시대일보>) 벌교 채중현 대 양경수 간의 소송사건에 대한 기사(109, 124)가 사실을 번복 기재한 사건에 대하여는 사실대로 다시 보도하는 동시에 지면을 통하여 천하에 사죄하라는 경고문을 발송할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사실을 왜곡보도한 <시대일보>가 정정보도와 사과기사를 내야한다는 뜻이다.

 

 

이 결의 사항에는 또 전남동부 6군에 있는 각 신문, 잡지의 지국과 분국 경영자로서 일반 민중에 해독을 끼치고 신문의 근본 사명을 상실케 하는 자가 있을 때는 각 본사에 교섭하고 사회에 공개하여 철저히 기 폐해를 방지할 일자격이 없는 기자가 채용되어 조고계(操觚界=언론계)의 체면을 오손케 하는 기자를 정리케 할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 채중현을 상대로 토지반환소송이 제기된 것은 사실이나, 채중현이 패소한 것 같지는 않으며, 일부 언론이 양경수의 편을 들고 채중현을 비판한 것은 사실을 왜곡한 보도로서, 지역 언론인들의 자성과 재발 방지 결의를 낳게 한 것으로 보인다. (jc, 202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