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1931벌교

[최승희1931벌교공연] 4. 벌교구락부

조정희 2025. 5. 12. 17:05

벌교극장 설립을 알리는 신문기사에는 벌교구락부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구락부란 영어의 클럽(club)을 일본어 발음으로 쿠라부(クラブ)’라고 읽고 이를 같은 발음의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구락부는 건물의 이름이 아니라 모임(meeting)의 이름이지만, 흔히 그 모임이 이루어지는 회관을 구락부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에 가장 먼저 등장한 구락부는 제물포구락부정동구락부이다. 조선이 19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으로 개국한 후, 러시아(1880), 미국(1882), 이탈리아(1884), 독일(1886), 프랑스(1886) 등과도 통상조약을 맺자, 유럽과 미국의 상인들과 외교관들이 조선에 주재하기 시작했고, 조선의 관문이었던 제물포 일대에 각국의 조계지가 설치됐다.

 

 

아오야마 코헤이(靑山好惠)<인천사정(1892)>에 따르면, 조계국의 외교관과 상인, 선교사들이 공동관심사 추구와 외교활동을 목적으로 1891년 제물포구락부라는 사교클럽을 결성했다.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양철 지붕을 덮은 벽돌식 2층 건물을 신축, 구락부회관으로 삼았다. 회관의 내부에는 사교실과 도서실, 당구대 등이 있었고 실외에는 테니스코트가 있었다.

 

 

1901622일의 제물포구락부 회관 개장식에서는 선교사 호레이스 알렌Horace Newton Allen, 安連, 18581932)의 부인 프랜시스 앨런(Frances Ann Allen)이 은열쇠로 문을 열었고, 영국공사 허버트 고페(Herbert Goffe)가 축하 연설을 했던 것으로 전한다.

 

한편 한양 주재 서양인들은 189262일 외교관 및 영사단 모임을 결성하고 이를 서울 클럽(Seoul Club)이라고 불렀다. 서울 클럽의 회관으로 고종은 덕수궁내 중명전을 제공했으나, 실제로 모임이 자주 이뤄진 곳은 앙토와네트 손탁(Antoinette Sontag, 孫澤, 1854~1925)이 고종의 후원으로 설립하고 운영했던 손탁 호텔(1902-1909)이었다.

 

 

제물포구락부 회관(1901)과 손탁 호텔(1902)은 둘 다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Афанасий Иванович Середин-Сабатин, 1860-1921)이 설계한 작품이라는 주장이 있다. 문헌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레딘사바틴은 한국사의 첫 두 구락부 회관의 설계자인 셈이다.

 

외교관과 선교사 클럽으로 시작된 구락부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성격이 달라졌다. 한편으로는 취미 위주의 동호인 모임의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 지역의 지주와 사업가들의 사교 모임으로 자리 잡았다.

 

 

노인구락부(매일신보 19111020, 2), 문예구락부(매일신보 1913128, 2), 독자구락부(1913426, 3), 바둑구락부(부산일보, 1915110, 1) 등이 전자의 예이고, 진해구락부(부산일보, 1915130, 1), 상주구락부(부산일보, 191529, 3), 사천구락부(부산일보, 1915219, 1), 울산구락부(부산일보, 191532, 1), 의주청년구락부(동아일보, 1920412, 4), 군산경신구락부(동아일보 192054, 4), 논산청년구락부(동아일보, 192058, 4), 대전청년구락부(동아일보, 1920515, 4), 광양의 삼봉구락부(조선일보, 19231215, 4) 등은 후자의 예였다.

 

일제강점기 지방유지 모임이었던 구락부는 단순한 사교모임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갈등을 조정하는 모임이었고, 다수의 일본인과 소수의 조선인들로 구성된 경우가 많았다.

 

 

벌교에도 구락부가 결성되었다. 그 창립일이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192511월호 <개벽(63, 110-111)>에 실린 차상찬(車相瓚)전라남도답사기에 벌교구락부가 언급되지 않았던 반면, 1926525일의 <조선일보(1)>에 벌교구락부의 임시총회가 열렸다는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보아, 벌교구락부는 1925년 말과 1926년 상반기에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벌교구락부는 1926813일 남조선정구대회를 후원(조선일보, 1926810, 1)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오면서 상설회관과 극장의 필요성이 높아지자, 1930126일 채중현의 출연으로 벌교구락부의 회관으로 <벌교극장>을 건립한 것이다. (jc, 2025/5/1)